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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6

[오늘]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 마침내 법정에 서다 [역사 공부 ‘오늘’] 1961년 4월 11일, 아이히만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되다 모사드, 15년 추적 끝 학살자 아이히만 체포 압송 1961년 4월 11일, 이스라엘 검찰이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한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1962)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아이히만은 ①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수백만 명 학살, ② 치클론-B 독가스 도입 및 운용, ③ 리투아니아 8만 명 학살, ④ 라트비아 3만 명 학살, ⑤ 벨라루스 4만5천 명 학살, ⑥ 우크라이나 7만5천 명 학살, ⑦ 키예프 3만3천 명 학살 계획 입안 등 모두 15가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에 대한 단죄는 1946년 9월 30일, 뉘른베르크(Nuremberg) 전범 재판을 통해 이.. 2024. 4. 11.
[오늘] 상하이 임시정부와 4·13 총선거 1919년 4월 13일 상하이 임정 수립 : 2016년 4월 13일 총선거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다. 97년 전 오늘,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은 이틀 전(4월 11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고 이 사실을 세상에 널리 공표한 것이다. 비록 국외 망명지였지만 패망한 ‘왕의 나라’ 대신 ‘백성’들의 나라 ‘대한민국’이 비로소 탄생한 것이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임시정부가 상하이(上海)에 터전을 잡은 것은 상하이가 경술국치 이후, 국내외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모여들어 활동하면서 해외 독립 운동의 근거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즈음 상하이에는 천여 명의 한국 혁명지사들이 머물고 있었다. 대한제국 장교 출신으로 경술국치 이후 망명해 신해혁명(1911)에.. 2024. 4. 10.
[오늘] 야만의 현대사-인혁당 피고 8인 사형 집행 1975년 4월 9일, 인혁당재건위 피고 8명, 형 확정 18시간 만에 사형 집행 ‘1975년 4월 9일’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프고 슬픈 야만의 시간이었다. 그날 새벽, 서울구치소에서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4월 8일, 판결이 확정된 후 불과 18시간 만이었다. 1975년 4월 9일의 ‘사법살인’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에서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한 것은 그것이 유신 독재정권에 의한 명백한 ‘사법살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국가에 의해 살해된 서도원(53·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김용원(41·경기여고 교사), 이수병(40·일어학원 강사), 우홍.. 2024. 4. 9.
[오늘] 조선혁명군 여전사 오광심 선생 돌아가다 1976년 4월 7일, 여전사 오광심 선생 돌아가다 1976년 4월 7일 오전 6시 30분, 조선혁명군과 광복군 소속으로 일제와 싸웠던 오광심(吳光心, 1910~1976) 선생이 마포구 망원동 자택에서 예순여섯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남만주 조선혁명당 산하 조선혁명군(사령관 양세봉, 참모장 김학규) 사령부 군수처에서 복무하였고 유격대 및 한중연합 항일전에도 참여한 여전사였다. 오광심은 평안북도 선천 출신이다. 어려서 남만주로 이주하여 흥경현 왕청문에 있는 화흥중학(化興中學) 부설 사범과에서 공부하며 민족의식을 길렀다. 화흥학교는 1927년 민족주의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正義府)가 설립한 학교였다. 1920년대 후반 만주의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정의부 주도의 전 민.. 2024. 4. 7.
[오늘] 시인 신동엽, 통일 열망 품은 채 서른아홉에 지다 1969년 4월 7일, 신동엽 시인 간암으로 영면 1969년 4월 7일은 김수영과 함께 1960년대를 가장 뜨겁게 살았던 시인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이 간암으로 서울 동선동 자택에서 서른아홉의 삶을 마감한 날이다. “‘1950년대 모더니즘’을 거치지 않고, 토착 정서에 역사의식을 담은 민족적 리얼리즘을 추구”했고 동학농민전쟁을 소재로 한 과 같은 ‘이야기 시’로 독특한 시세계를 전개해 온 시인은 40년을 채 살지 못하고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유명한 시 ‘껍데기는 가라’가 고교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동명의 코미디언으로 자주 오인된다. 하긴 시가 읽히는 대신 텔레비전이 소비되는 시대, 살아 있는 코미디언을 두고 거의 반세기 전에 떠난 시인을 세상이 어찌 기억.. 2024. 4. 6.
[오늘] 구한말 풍운아 김옥균, 자객의 총탄에 쓰러지다 [역사 공부 ‘오늘’] 1894년 3월 28일-갑신정변의 김옥균, 상하이에서 피살 1894년 3월 28일 오전, 중국 상하이 미국 조계(租界) 안의 일본 여관 동화양행 2층의 객실에서 울린 세 발의 총탄이 한 사나이를 쓰러뜨렸고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자주 근대화를 통해 새로운 ‘근대 조선’을 꿈꾸었던 혁명가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은 그렇게 그 풍운의 삶을 마감했다. 향년 43세. 10년 전 갑신정변(1884)으로 곤경에 처했던 민씨 척족(戚族) 정권이 파견한 자객 홍종우(1850~?)의 총탄은 ‘근대 조선’의 길을 모색한 정객 한 명을 쓰러뜨린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봉건왕조 조선이 근대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김옥균은 1870년 .. 2024. 3. 28.
[오늘] 평민 의병장 김백선 군율로 처형되다 [역사 공부 ‘오늘’]1896년 3월 27일-평민 의병장 김백선 군율로 처형 1896년 3월 27일, 호좌의진(湖左義陣, 호좌는 충남)의 선봉장 김백선(1849~1896) 장군이 군기 문란의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3월 16일, 그는 가흥(可興:영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진지를 점령하던 중 본진에 요청한 원군이 오지 않아 점령에 실패하고 끝내 패퇴했다. 본진에 돌아온 김백선은 중군장(中軍長) 안승우(1865~1896)에게 칼을 뽑아 들고 요청한 원군을 보내지 않은 데 항의하였다. 그러나 안승우는 ‘대장을 옹위해야 하는 중군의 소임 때문에 병사를 함부로 뺄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호좌의진의 대장 유인석(1842~1915)은 대로했다. “그대는 본시 한낱 포수에 불과한.. 2024. 3. 27.
[오늘] 박열·가네코 부부, 대역죄로 사형을 선고받다 [역사 공부 ‘오늘’] 1926년 3월 25일, 박열 부부 대역죄로 사형을 선고받다 1926년 오늘(3월 25일), 일본의 최고재판소인 대심원에서 대역죄로 기소된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朴烈, 1902~1974)과 그의 일본인 부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의 결심 공판이 열렸다. 정복과 사복 차림의 경찰 200여 명과 헌병 30명이 법정 출입자를 삼엄하게 검문하는 등 법원 안팎을 통제하고 있었다. 박열·가네코 부부, 대역죄로 사형을 선고받다 재판장은 선고 전에 일어설 것은 명했지만 피고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재판장은 형법 제73조 ‘대역(大逆)’죄와 폭발물 단속벌칙 위반으로 이 부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후미코는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고 박열도 “재판은 비열한 연극이다!”라.. 2024. 3. 25.
[오늘] 샌프란시스코의 총성, ‘의열투쟁’의 첫 장을 열다 [역사 공부 ‘오늘’] 1908년 3월 23일, 장인환·전명운 의사 스티븐스를 처단하다 1908년 3월 23일은 월요일이었다. 오전 9시 30분, 샌프란시스코 항 페리호 부두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대한제국 ‘외교 고문’으로 일시 귀국 중이던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가 총을 맞고 쓰러졌고, 현장에서 두 명의 한국 청년 전명운(25)·장인환(33)이 체포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총성, 장인환·전명운 의거 후송된 스티븐스는 이틀 후 총탄 제거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고 두 사람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전명운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고 장인환은 2급 살인죄로 기소되어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19년 특사로 풀려났다. 이 사건이 바로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2024. 3. 22.
[오늘] 재독작가 이미륵, 뮌헨에서 타계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3월 20일, 재독작가 이미륵 타계 1950년 3월 20일, 독일 뮌헨 근교 그래펠핑(Gräfelfing)에서 망명 한국인 작가 이미륵(李彌勒, 1899~1950)이 위암으로 짧지만 강렬한 삶을 마감했다. 향년 51세. 그는 독일인 친구와 제자, 그리고 양어머니 자일러(Seyler)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통제를 맞고서 “애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만세’를 낮은 목소리로 불러 좌중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 다음 임종의 순간을 맞았다. 그는 독일이, 독일인이 사랑한 한국인이었다. 그가 쓴 소설, 는 막스 뮐러의 만큼 독일인이 아끼는 책이 되었다. 떠난 지 70년이 가깝지만, 이미륵과 그의 문학은 여전히 독일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독일인이 사랑한 이미륵, 이미륵은 황해도.. 2024. 3. 20.
[오늘] 그 소설 한 편이 ‘남북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역사 공부 ‘오늘’] 1852년 3월 20일-스토우 부인, 장편 출판 1852년 오늘(3월 20일),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의 장편 소설 (Uncle Tom’s Cabin)이 보스턴의 한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스토우는 책을 내 줄 출판사를 찾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출간 며칠 만에 1만 부가 나갔고 첫해에만 30만 부가 팔렸다. 그것은 당시 성서 이외에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었다. 이 책은 영국에서도 첫해 동안 100만 부가 팔려나간 초 베스트셀러였다. 흔히 ‘스토우 부인’이라고 불리는 해리엇 비처 스토우(1811~1896)는 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장로교 목사로, 노예제 반대론자에게 소총을 보내서 겁박한 일 때문에 .. 2024. 3. 19.
[오늘] 미라이 마을에 대한 미군의 보복, ‘학살과 초토화’ [역사 공부 ‘오늘’] 1968년 3월 16일 – 미군, 베트남 미라이에서 민간인 대량 학살 전쟁은 병사들이 수행하지만, 민간인들이 희생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사실이 민간인의 희생을 정당화하거나 가해 사실을 면책해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전쟁 중 민간인 희생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병사들이 자행하는 민간인 학살이다. 특히 베트남전쟁에서는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적지 않았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이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미라이에서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 대량 학살이다. 이 사건에서 347명에서 504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는 모두 비무장 민간인이었으며 상당수는 여성과 아동이었다. 희생자 가운데 성폭력이나 고문을 당한 이도 있었고, 시체 중 일부는 절단된 채 발견되었다. 이 .. 2024.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