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201

[오늘]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 교수형 선고 [역사 공부 ‘오늘’] 1961년 12월 15일, 예루살렘 법정 아이히만에게 교수형 선고 1961년 12월 15일, 이스라엘 정부가 연 예루살렘의 특별 3심 법정은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즉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에게 붙잡혔으나, 1946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아이히만이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것은 1958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누린 평화는 짧았다. 나치 전범 추적자 지몬 비젠탈(Simon Wiesenthal)과 이스라엘 자원봉사 단체에 의해 정체가 드러난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9일 뒤 비밀.. 2019. 12. 14.
[오늘] 첫 시상, 이후 노벨상 이야기 노벨상, 그리고 노벨문학상 이야기 1910년 12월 10일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첫 시상식이 열렸다. 알프레트 노벨(1833~1896)의 5주기를 맞아 3,150만 스위스 크로네(약 92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상금은 5개 부문 6명의 수상자에게 돌아갔다. 5개 부문 6명의 수상자 중 알 만한 사람은 물리학상을 받은 엑스(X)선을 발견한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과 평화상을 프레데리크 파시(Frederic Passy, 국제평화연맹 설립자)와 공동 수상한 적십자 창설자인 앙리 뒤낭(Jean-Henri Dunant)이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진 이 역사적인 상의 첫 시상은 그러나 어수선했던 모양이다. 형식도 그랬지만, 내용으로도 그리 개운하.. 2019. 12. 6.
[오늘] 베를린 장벽 붕괴 [역사 공부 ‘오늘’]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무너지다 28년 만에 베를린 장벽 붕괴-‘육지의 섬’ 혹은 ‘반파시스트 보호벽’ 1989년 11월 9일은 목요일이었다. 오후 7시, 동독 경찰과 군 당국이 여행 자유화 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마침내 동서 베를린을 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61년,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서방측 선동을 차단한다는 구실로 장벽이 구축된 지 28년 만이었다. 1961년 8월 12일 밤 동독은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모든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한 장벽을 설치했다. 철조망과 블록으로 이루어진 장벽은 기관총 초소와 지뢰 지역이 설치된 5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대체되었다. 1980년대에는 고압선과 방어 진지들이 45㎞에 걸쳐 구축되어 베를린시를 양분하고 서베를린 주.. 2019. 11. 9.
[오늘] ‘10·4 남북공동선언’, ‘6·15’를 이으며 ‘판문점선언’으로 [역사 공부 ‘오늘’] 2007년 10월 4일, 남북공동선언으로 6·15 실천방도를 밝히다 6·15공동선언은 통일의 원칙, 10.4선언은 그 실천강령 2007년 10월 4일 오후 1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공동 서명했다. 이 ‘10·4선언’은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에 이은 ‘제2차 남북정상선언’으로 불린다. 이 공동선언이 천명하고 있는 합의 사항은 크게 3가지 영역, 즉 ① 통일문제 논의를 위한 남북한 각 분야의 접촉면 확대와 6·15공동선언 이행을 통한 남북한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② 서해 평화수역 조성 등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와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항구적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③ 민족경제·문화.. 2019. 10. 3.
[오늘] 훈민정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역사 공부 ‘오늘’] 1997년 10월 1일-훈민정음,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기록유산이 되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는 우리나라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가 고문서 등 전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하여 1997년부터 2년마다 세계적 가치가 있는 기록유산을 선정하는 사업에 첫 대상으로 훈민정음이 선정, 등재된 것이다. 1997년에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등재된 이래, 2001년에 『승정원일기』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2007년에는 『조선왕조 의궤』와 『고려 대장경판·제 경판』, 2009년에는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 2011년에는 조선 후기 왕들의 언동을 기록한 『일성록.. 2019. 10. 1.
[오늘] 118년 전, 영등포에서 ‘경부철도’ 기공식 열리다 [역사 공부 ‘오늘’] 1901년 8월 20일, 영등포에서 경부철도 기공식 거행 1901년 8월 20일, 일본 자본 회사인 경부 철도 주식회사는 서울 영등포에서 경부철도 기공식을 열었다. 한 달 뒤인 9월 21일에는 종점인 부산 초량에서도 공사에 들어갔다. 경부철도는 4년 후인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었고, 1905년 1월 1일을 기하여 전 노선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개통식이 거행된 것은 그해 5월 25일에 서울 남대문 정거장(지금의 서울역) 광장에서였다. 경부선의 부설은 두말할 것 없이 일제의 한반도 침략 정책 수행의 구체적 발판이었다. 경부선 철도건설에 관한 문제가 조약 문서로 나타난 것은 1894년 ‘한일잠정합동조관(韓日暫定合同條款)’에서다. 이후 일제는 1898년 ‘경부철도합동조약(京釜鐵道.. 2019. 8. 20.
[오늘] 콜럼버스, ‘대서양 항해 탐험’ 첫 항해 출범 [역사 공부 ‘오늘’]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 ‘대서양 항해 탐험’ 첫 출범 1492년 8월 3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는 산타 마리아(Santa María), 핀타(Pinta), 니나(Niña)호 등 세 척을 배를 이끌고 스페인 남쪽 팔로스(Palos)항을 떠나 ‘대서양 항해 탐험’의 첫 항해에 나섰다. ‘대서양 항해 탐험’ 출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이 탐험가는 대서양 항해 탐험이 성공하면 기사와 제독 작위, 발견한 땅을 다스리는 총독의 지위, 얻은 총 수익의 10분의 1이라는 실현 가능성 없는 조건을 제시하여 1484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같은 조건으로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도 설득하지 못했지만, 그는 .. 2019. 8. 2.
[오늘] 충북 영동 노근리, 미군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1950.7.26.∼7.29.) 한국전쟁 발발 한 달 만인 1950년 7월 26일부터 7월 29일까지 미군 제1기갑사단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지역에서 무고한 지역의 양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미군은 피란을 떠나는 민간인들을 한 데 불러 모은 뒤, 비행기 폭격과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이른바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No Gun Ri Massacre)’이다. 한국전쟁 개전 초기에 인민군과의 교전에서 패배한 이후 충격과 혼란에 빠져 후퇴를 거듭하고 있던 미 24사단 병력이 새로 도착한 1기갑사단에 영동 방어진지를 인계한 것은 7월 22일이었다. 거침없이 남진을 계속한 인민군에 밀려 미군 1기갑사단도 후퇴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7월 23일 정오, 영동읍 .. 2019. 7. 26.
[오늘] 남북한 당사자 간 최초 합의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역사 공부 ‘오늘’]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발표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에 분단 이후 남북한 당사자 간 최초의 합의문서인 ‘7·4 남북공동성명’이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되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분단 27년 만에 남북이 최초로 통일문제를 합의하여 발표한 역사적 공동성명이었다. 7·4 남북공동성명, 분단 이후 첫 합의문서 이날, 남과 북은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평양의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으며, 김영주 부장을 대신한 박성철 제2 부수상이 197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을 방문하여 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진행했다.”는 경과보고에 이어 ‘조국통일원칙’과 남북의 통일문제 해결을 위.. 2019. 7. 4.
[오늘] 3·1운동의 ‘마중물’, 2·8독립선언도 100돌을 맞는다 [역사 공부 ‘오늘’] 1919년 2월 8일, 동경유학생들 ‘조선 청년 독립선언’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의 해지만, 100돌을 맞이하는 게 3·1운동만은 아니다. 기미독립선언 한 달 전에 동경에서 선포된 2·8독립선언과, 한 달쯤 뒤인 4월 11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이루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도 역시 100주년을 맞는다. 3·1운동은 2·8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아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했고, 이는 다시 망명지 상하이에서의 임정 수립으로 이어졌다. 동경유학생들,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독립선언' 동경유학생인 와세다(早稻田)대학의 최팔용(崔八鏞) 등이 조직한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은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였다. 이날 열린 조.. 2019. 2. 8.
[오늘] 조현병, 딸의 실종, 이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 [역사 공부 ‘오늘’] 1962년 1월 26일, 덕혜옹주 38년 만의 환국 1962년 1월 26일, 소학교 5학년이던 1925년에 볼모로 일본에 끌려갔던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1912~1989)가 3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외로움과 향수 때문에 조발성 치매증을 앓던 이덕혜는 대마도(對馬島) 번주(藩主)의 아들 소 다케시(宗武志)와 강제 결혼했다가 이혼당한 뒤에야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지막 황녀, 38년 만에 귀국하다 나라를 잃은 왕족들의 삶은 그들 조국의 운명처럼 파란만장했다. 이들의 삶 앞에 ‘비운’이라는 형용이 관습적으로 쓰이는 이유다. 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지만, 고종(1852~1919)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강제퇴위 당했고, 그 아들 순종(1874~1926)은.. 2019. 1. 25.
[오늘] 90년 전 오늘, 식민지 시기 최대규모 ‘원산총파업’ 돌입 [역사 공부 ‘오늘’] 1929년 1월 13일, 원산노동연합회 총파업 선언 1929년 1월 13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 산하 노동조합원 2200여 명이 참여한, 일제 식민지기 최대 규모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공장 노동자의 파업에서 비롯된 이 대규모 연대 파업은 8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지역의 모든 부문 노동자와 총자본이 맞붙은 유례없는 이 파업 투쟁은 일제의 노동정책은 물론 이후 노동운동의 활동 방식과 노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 감독의 노동자 구타로 촉발 원산총파업은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製油)공장 노동자의 파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함경남도 덕원군 문평리 소재, 영국인이 경영하는 문평 라이징 선(Rising Sun) 석유.. 2019.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