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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퇴직일기4

나는 매일 ‘건넌방’으로 출근한다 ‘퇴직의 일상’을 견디는 법 처음으로,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지난 3월 1일, 지역 시민단체를 따라간 답사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문득 내일 출근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마주 앉은 후배 교사에게 으스댔다. 내일 출근해야지? 난 안 해도 된다네. 3월 한 달쯤은 그런 기분이 쏠쏠했다. 일요일에 무리하더라도 월요일 출근을 염려할 일이 없었고, 주중에 과음해도 다음 날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먼 길을 떠나면서도 시간을 다투지 않아도 되었다. 그게 ‘은퇴자의 여유’였던 것이다. 느슨해지는 ‘시간의 경계’ 그런데 시간이 많다는 것과 시간을 제대로 쓸 줄 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게 시간관념을 느슨하게 하는 건 .. 2022. 5. 9.
동네 도서관에 등록하다 동네 도서관에 등록해 대출증을 만들다 퇴직하겠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물론 그 반응은 순전히 지인에 대한 염려와 선의의 표현이다. 거기엔 정년이 남았는데 굳이 서둘러 나갈 이유가 있는가, 나가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걱정이 은근히 담겨 있다. “무슨 일을 할 건데?” “무슨 다른 계획이 있는가?” “엔간하면 정년까지 가지, 왜 나가려는가?” 내 대답도 정해져 있다. 충분히 있음 직한 질문이고 그게 염려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서운한 느낌이 있다. 나는 속으론 부아를 낸다. 아이들하고 씨름하면서 50분 수업을 하루에 네댓 시간씩 하는 게 얼마만 한 중노동인지 알기나 해? “할 일은 쌨어. 돈이 모자라는 게 문제지, 노는 건 석 달 열흘도 쉬지 않고 놀.. 2022. 3. 9.
텃밭을 걷으며 버려진 밭에서 자란 마지막 열매를 거두다 텃밭 이야기를 한 게 지난 7월 초순이다. 게으름을 피우며 간신히 밭을 가꾸어 가면서도 그 손바닥만 한 텃밭이 우리에게 주는 게 어찌 고추나 가지 열매에 그치겠냐고 방정깨나 떨었다. 그게 빌미가 되었던가 보았다.[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날씨는 끔찍하게 더웠고, 움직이는 게 힘겹던 시기여서 잔뜩 게으름을 피우다가 보름쯤 뒤에 들렀더니 텃밭 작물들은 거의 빈사 상태였다. 고추도 가지도 바짝 말라 쪼그라들고 있었으므로 아내는 탈기를 했다. “그렇게 나 몰라라 하고 내던져 뒀는데 무슨 농사가 되겠우? 올핸 글렀으니 내년에 어째 보든지…….” 물 구경을 못 한 고추는 자라다 만데다 병충해까지 꾀었다. 익은 것과 성한 것들만 따서 거두어 .. 2021. 9. 27.
가끔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 아이들 앞에 서서 강의하는 내 모습을 그리지만… 오륙 년 전에 퇴직한 내 친구는 명퇴한 교사가 기간제 교사로 학교로 돌아오는 걸 특유의 독설로 비난하곤 한다. 제 뜻으로 떠난 인간이 왜 다시 돌아와 젊은이들 일자리를 빼앗는가 하고 말이다. 동감이다. 같은 조건으로 젊은이와 경쟁하는 경우에 경력 교사가 뽑히리라는 건 물으나 마나기 때문이다. 학교를 떠나면서 내가 다시 교단으로 돌아올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그래서였다. 교원 자격을 갖고 있지만 임용되지 못한 예비교사 자원은 넘친다. 그러나 이들을 잘 구할 수 없게 되는 때도 있기는 하다. 임용시험이 가까워지면 넘치던 이 자원이 갑작스레 고갈되는 것이다. 기다렸지만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런 시기에 부득이하게 잠깐 교단으로 돌아온 이들이 주변에.. 2019.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