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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정직2

[순국(殉國)] ‘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서거 1938년 3월 10일, 도산 안창호 병보석 중 타계하다 1938년 3월 10일, 도산(島山) 안창호(1878~1938)가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간 경화증으로 파란 많았던 우국의 삶을 마감했다. 그는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복역하다가 같은 해 12월에 병으로 보석 되어 요양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향년 60세. 도산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이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다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상경하여 언더우드(Underwood, H. G.)가 경영하는 구세학당(救世學堂)(밀러학당, 통칭 언드우드학당)에 입학, 3년간 수학하며 기독교 세례를 받았고 서구문물과 접하게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평양에서 관서지부 조직을 맡게 되었다. 이때 평양지회 결성식이 열린 평.. 2024. 3. 10.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스마트 코리아’ 막장으로 치닫는 현병철 위원장의 국가인권위원회 경찰과 보수 세력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희망 버스’는 부산으로 달려갔다. 전국에서 모인 일만오천의 시민들은 ‘인간의 삶과 일’을 위해 싸우는 한 해고노동자에게 ‘인간의 사랑과 연대’를 뜨겁게 전했다. 그것은 새삼 ‘인간은 아름답다’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국가인권위, 직원들 ‘부당징계’ 강행 이런 벅찬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29일에는 그예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인권위 노조 간부 해고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인 직원들의 징계를 강행했다. 그것도 애초에 현병철 위원장이 요구한 징계 수위(3명 중징계, 8명 경징계)보다 높은 4명에겐 중징계인 정직을, 다른 7명에게는 경징계인 감봉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인권위는 비슷한 사안에 .. 2022.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