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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장모님3

[2017 텃밭일기 6] 수확에 바빠 ‘까치밥’을 잊었다 묵은 밭의 고추를 뽑고 배추와 무를 심은 지 한 달이 지났다. 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감나무 꼭대기까지 타고 오른 호박 이야기로 헛헛한 기분을 달랬었다. [관련 글 : 따, 말아? 감나무 꼭대기의 호박] 일주일쯤 뒤에는 새 밭의 고추도 뽑았다. 탄저를 피한 푸른 고추 몇 줌을 건지는 걸로 우리 고추 농사는 마무리되었다. 틈틈이 따낸 고추는 아내가 노심초사 끝에 햇볕과 건조기로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기 여러 번, 얼추 열 근에 가까운 양이 되었다. 고춧가루의 고운 빛깔에 아내는 무척 흡족해했고 진딧물과 탄저에도 그쯤이라도 건진 걸 나 역시 대견하게 여겼다. 추석을 쇠고 차일피일하다 보니 열흘이 훌쩍 지났다. 명절 끝에 고구마를 캐자고 했는데 그게 자꾸 미루어진 것이었다. 고구마를 캐고, 못 가본 새에.. 2021. 10. 19.
장모님의 고추 농사 장모님의 밭에 들르다 며칠 전,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장모님께 들렀다. 숨이 막히는 더위에 노인은 지쳐 보였다. 저녁을 얻어먹고 일어서려니 또 고추 등속을 챙겨 주신다. 하우스에서 지은 고추인데, 그 크기에 입이 딱 벌어진다. 크기에 관한 한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놈이다. 품종이 뭐냐고 여쭈었더니 ‘부촌’이라신다. 길이가 20cm에 가깝고 굵기도 만만찮다. 부촌이란 품종이 원래 이렇게 큰가 했더니 당신께서 지으신 것만 유별나다고 하신다. 크고 실한 놈 한 줌을 얻어 돌아오는데 마음이 뿌듯하다. 고추가 저렇듯 훌륭하게 자라는 데 닿은 노인의 발길과 거기 머문 손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노인의 비닐하우스에 천장을 찌를 듯 서 있던 고추가 맺은 열매들이다. 선홍색 빛깔도, 미끈하.. 2021. 7. 22.
친어버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에 친 어버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을 맞으며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공연히 오지랖이 넓어지는 증세가 도진다. 수업을 마치기 전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잠깐…, 내일 이야기를 좀 하자. ……무슨 날인지 알지?” “? ……, !” “체육대회요!” “어버이날요!” “준비들은 하고 있겠지?” “…….” “문자나 보내죠, 뭐.” “꽃이나 달아드려야죠.” 아이들은 좀 풀이 죽은 듯 침묵하거나 다소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아이들에게 내일 치르는 체육대회는 가깝고, 어버이날은 멀다. 열여덟 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나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깨우치기에는 어린 나이고, ‘나와 가족의 관계’에 대한 자의식을 갖기에는 넘치는 나이다. 뜻밖의 답도 있다. “부끄러워서요…….” 나는 아이가 말한 부끄러움의 의미를 이해한다. 18.. 2020.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