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잊혀진 계절2

‘길들여지다’는 ‘길들다’로, ‘잊혀진’도 이제 그만 [가겨 찻집] 불필요한 피동과 ‘이중 피동’ 표현들 10여 년 전, 여학교에 근무할 때, 아이들과의 관계를 다룬, “우린 서로에게 잘 길들여지고 있다”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신학년도에 담임으로 아이들을 만난 지 한 달, 아이들과의 편안해진 관계를 기꺼워하며 쓴 글이었다. “한 달이 덜 되었지만, 아이들은 내게 잘 ‘길들여지고’ 있다. 어린 왕자가 말했던 것처럼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시에 나도 아이들에게 잘 길들여지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면서 ‘서로가 필요한 관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되는’ 사이가 되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새 블로그에 올리려고 글을 정리하는데 내 문서편집기 ‘아래아 한글 2018’은 그 제목을 비롯하여 본문 곳곳에 .. 2021. 9. 7.
노래여, 그 쓸쓸한 세월의 초상이여 유년 시절에 만난 대중가요, 그리고 세월 초등학교 6년을 유년기(幼年期)로 본다면, 나는 가끔 내 유년이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의 시기가 아니었나 하고 의심하곤 한다. 무슨 턱도 없는 망발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소리’를 ‘음성’이 아니라 일정한 가락을 갖춘 ‘음향’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매미 소리와 택택이 방앗간 소음의 유년 앞뒤도 헛갈리는 기억의 오래된 켜를 헤집고 들어가면 만나는 최초의 소리는 매미 소리다. 초등시절, 여름 한낮의 무료를 견딜 수 없어 나는 땡볕 속을 느릿느릿 걸어 집 근처의 학교 운동장을 찾곤 했다. 지금도 혼자서 외로이 교문을 들어서는 내 모습이 무성영화의 화면처럼 떠오른다. 거기, 오래된 단층 슬라브 교사, 운동장 곳곳에 자라고 있는 잡초들, 그리고 탱자나.. 2019.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