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인연3

고별-나의 ‘만학도’들에게 방송통신고 졸업생 여러분께 어떤 형식으로든 나의 만학도, 방송고 졸업반인 당신들에게 마음으로 드리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걸 나는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날 연휴에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마땅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식은 14일이고 여행에서 돌아온 것은 12일입니다. 호기롭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강행군을 하면서 여독이 만만찮았고, 거기다 가족 모두가 독감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오한과 발열로 하룻밤을 꼬박 밝히면서 저는 문득 이게 내가 31년을 머문 학교를 떠나면서 치러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학도들에게 건네는 고별인사 여행의 첫 3일은 좀 무더웠고 마지막 날은 추웠습니다. 공항에서 몸을 잔뜩 오그리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은 더해졌습니다. 귀가해 하룻밤을 .. 2022. 2. 19.
쥘부채…, 세월 그리고 인연 어떤 아이가 준 쥘부채와 세월 어릴 적에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햇볕에 발갛게 익어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커다란 부채로 한참 동안 바람을 부쳐 주시곤 했다. 그것도 아주 느리게 천천히. 그게 성이 차지 않아 어머니에게서 부채를 빼앗아 마구 까불 듯 부쳐 보지만 금세 팔이 아파서 그치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싱긋 웃으시고 다시 가만가만 공기를 떠밀어내듯 설렁설렁 부채질을 해 주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팔도 아프지 않으실까. 어째서 어머니는 지치지도 않고 저리 부채질을 하실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오래도록 쉬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거듭하는 얘기다. 올해는 더위를 유난히 견디지 못했다. 여자아이들은 온도에 매우 예민하다. 교사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견디고 있는데도 몇몇 아이들은 얇은 담요를 덮어.. 2021. 9. 18.
짧은 만남, 긴 여운 방송통신고에서의 짧은 만남 어제는 부산 동래고등학교에서 방송통신고 영남 연합 체육대회가 열렸다. 고교생(?)이 치르는 대회라기엔 대회 규모도 내용도 만만찮다. 우리 학교도 세 대의 전세버스 편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애당초 친선행사인 만큼 승부에 집착할 일은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 행사에 참가하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 같았다. 영남권의 방송고는 모두 10개교다. 경북 4개교를 비롯하여 대구, 울산에 각 1개교, 부산과 경남에 각 2개교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남녀공학인데, 부산의 동래고는 남학교, 경남여고는 여학교라는 점이다. 입장식에서 모두 남녀가 같이 들어오는데, 두 학교는 단출하게 각각 남학생과 여학생만 들어왔다. 십 대 청소년도 아닌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유니폼을 입고 들어오는 광.. 2020.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