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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영남루2

‘영남루’, 촉석루와 함께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을 다투다 밀양 영남루(嶺南樓), 그 ‘야경’을 밀양팔경 제1경으로 올렸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밀양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내게 친숙한 도시다. 입대를 앞둔 청춘의 어느 날, 아내와 함께한 짧은 여행으로 첫 인연을 맺은 이래, 한때 젊음의 열망을 함께 지폈던 벗이 거기 정착하게 되고 30년 전의 여제자가 거기 살고 있다는 사실 등으로 말미암아 밀양은 내 삶과 꽤 가까운 도시가 되었다. [관련 글 : 밀양, 2017년 11월] 스물에 처음 찾았던 밀양, 영남루는 그 40년 뒤에 만나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밀양을 찾았었다. 시내 항일운동 테마 거리와 밀양 의열기념관을 찾아 약산 김원봉과 석정 윤세주 선생의 흔적을 더듬었고, 박차정 선생의 묘소와 김상윤, 최수.. 2023. 5. 13.
밀양, 2006년 8월(1) 밀양에서 함께한 ‘3장(張) 1박(朴)’의 여름 밀양을 다녀왔다. 내게 밀양은 몇 해 전만 해도 ‘표충사’와 ‘영남루’ 따위의 관광지와 함께 기억되는 남녘의 소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다. 그곳은 입대를 앞둔 청춘의 어느 날, 아내와 함께한 짧은 여행지였다. 밀양역 앞에서 만난 단발머리 여고생은 둘째 음절을 유달리 강조하는 억센 경남 사투리로 시내버스 격인 마이크로버스의 운임을 알려 주었었다. 낯선 도시를 방문한 젊은 연인들은 상대가 민망해하지 않을 만큼의 크기로 유쾌하게 웃었고, 두고두고 그 인상적인 억양을 입에 올리며 추억을 곰씹곤 했다. 그러나 어느 해부터 밀양은 내게, 하고 많은 숱한 도시가 아니라, 각별한 고장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햇수로 치면 18년, 내 젊음의 한때, 서툰 욕망과 열정으.. 2019.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