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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성황당2

정비석, 낙원 일본을 칭송하던 『자유부인』의 작가 의 작가 정비석의 친일 부역 정비석(鄭飛石, 1911~1991)은 40대 이하의 독자들에겐 좀 낯선 작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1930년대에 단편 소설 「졸곡제(卒哭祭)」와 「성황당(城隍堂)」으로 정식 등단한 소설가다. 그는 이른바 미문(美文)으로 널리 알려진, 1960, 7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금강산 기행 수필 「산정무한(山情無限)」의 지은이이기도 하다. 정비석은 1911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동, 본명은 서죽(瑞竹)이다. 필명으로 비석생(飛石生)·남촌(南村) 등을 썼으며, 본명 대신 스승 김동인이 지어 주었다는 필명 ‘비석’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6월 신의주중학교 4학년 때 ‘신의주 고등보통학교 생도 사건’으로 검거되어, 1930년 12월 신의주지방법원 형.. 2022. 3. 22.
아이 업은 저 여인, 어딜 가는고 안동 서지리 ‘서낭당’과 ‘선돌’을 찾아서 소싯적 일이다. 이웃 마을에서 산 너머 동네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신작로로 가면 금방이었지만 자동차도 드물고 어지간한 거리라도 걸어 다니던 시절이었다. 밋밋한 오르막 위 산등성이에 일부러 만든 듯한 묘한 돌무더기가 하나 있었다. 사람마다 거기다 돌멩이 하나씩을 던져 넣고 지나갔다. 그 마을 아이들은 그게 ‘아기 무덤’이라고도 했고, ‘귀신 무덤’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거기다 돌 하나라도 던져넣고 가지 않으면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은 우리를 은근히 을러대곤 했다. 지금은 아마 그 길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이 들이닥치면서 시골에 남아 있었던 공동체의 흔적 따위는 거짓말처럼 지워졌으니까. 그 미스터리의 돌무더기가 .. 2020.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