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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보물5

[오늘] 허준, <동의보감(東醫寶鑑)> 25권 완성하다 [역사 공부 ‘오늘’] 1610년 8월 6일, 허준 의서 완성 1610년(광해군 2년) 8월 6일(음력, 양력으로 9월 22일), 민족 의학을 정립시키는 대역사(大役事)에 매진해 온 허준(許浚, 1546∼1615)이 마침내 25권에 이르는 방대한 의서를 완성하였다. 왕명으로 한나라 때에 체계화된 한의학을 중심으로 동방 의학을 집대성하고자 한 저술에 착수한 지 14년 만이었다. 애당초 이 책은 1596년 선조의 왕명으로 내의원(內醫院)에 편찬국을 두고 허준을 비롯하여 어의(御醫) 양예수, 이명원, 김응탁, 정예남 등과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의(儒醫) 정작 등 5인이 공동으로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양예수는 당대의 신의(神醫)로 평가받은 어의였고, 정작은 민간의 도교적 양생술의 대가였다. 이들은 초.. 2023. 8. 6.
[세계유산-한국의 사원] ⑤ 도산서원, 퇴계의 위상과 명성을 상징하는 공간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陶山書院) 경북 안동은 두말할 것 없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고장이다. 이 고장이 이른바 영남 유림의 본거지가 된 건 퇴계와 그의 학문, 그의 문하들이 이룩한 성리학적 성취에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5백여 년이 지나서도 굳건한 그의 위상과 명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도산서원(陶山書院)이 있다. 퇴계 생전의 도산서당, 사후 ‘서원’으로 이어지다 퇴계는 을사사화(1545) 이듬해 1546년(명종 1)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한 뒤 토계에은둔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물러날 ‘퇴’, 시냇물 ‘계’, ‘퇴계(退溪)’라는 호를 쓰게 된 게 이때부터다. 전국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자 1551년(명종 6)에는 계상서당을 지어 본격적으로 제자들 가르쳤고 이.. 2023. 3. 25.
속리산 자락의 폐사지, 칠층석탑이 외롭다 [상주 문화재 순례] ① 보물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칠층석탑’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지난 13일 오전, 일행과 함께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699번지 상오리 칠층석탑을 찾았다. 그 전날, 상주에서 옛 동료들과 만났었고, 하룻밤을 동료의 작업실에서 묵은 뒤, 다시 만난 일행 두 사람과 함께 상주 관내 문화재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상주의 석탑 두 기 시외버스로 상주로 가면서 나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상주의 문화재를 대충 훑어보았다. 하룻밤을 묵고 난 다음 날에 짬을 내서 그걸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해서였다. 상주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중 국보는 없고, 보물이 20점이나 있었는데 그중 불탑이 두 기였다. 하나는 사벌국면(나는 ‘사벌면’.. 2022. 8. 26.
1천2백 년 세월 견뎌낸 돌탑과 당간지주 [성주의 불탑] ② 법수사지 삼층석탑(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PC에서 가로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 이미지로 볼 수 있음. 법수사지(法水寺址)는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214번지, 가야산국립공원 백운분소로 가는 길가에 있다. 경북과 경남의 도계, 즉 경북 성주군 수륜면에서 해인사가 있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솔티재 정상에 법수사지가 있다. 경북과 경남 도계에 자리잡은 법수사지 성주의 읍지(邑誌)인 에는 “세속에 전하기를, 아홉 개의 금당과 여덟 개의 종각과 무려 천 칸의 집이 있었다고 하였으며, 석불, 석탑, 석주(石柱), 석체(石砌, 섬돌) 등이 산허리 사방에 널려 있고, 절과 암자의 유지가 거의 백여 개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안내판에 따르면 802년(애장왕.. 2022. 7. 11.
들판에 외로이 선 삼층석탑, 그가 건너온 세월 천 년 [선산 톺아보기 ⑪] 해평면 낙산리 삼층석탑 *PC에서는 가로형 사진은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 이미지로 볼 수 있음. 해평면 낙산리 837-4번지 소재 낙산리 삼층석탑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676~935)의 전형적인 3층 석조 불탑이다. 구미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탑은 도리사 석탑과 함께 이 낙산리 탑, 둘뿐이다.(죽장리 오층석탑은 국보) 높이는 7.15m로 탑의 규모로는 작지는 않다. 탑은 낙산리 고분군(사적 제 336호)의 동남쪽의 낙산1리 마을회관의 남쪽 논 가운데 있다. 주변에는 석탑을 빼면 다른 유구(遺構 :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 따위를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잔존물)가 없다. 그러나 경작지에서 연꽃무늬가 새겨진 막새기와[와당(瓦當)]를 비롯하여 기와 조.. 2022.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