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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보리밭5

[2021 텃밭 농사 ③] 텃밭 농사도 ‘심은 대로 거두기’는 매일반 1. 풀매기(6월 5일) 지지대를 세워준 게 5월 26일, 열흘 만에 텃밭에 들르니 고랑마다 돋아난 풀이 말이 아니다. 일찍이 첫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나는 텃밭 일이 풀과의 씨름이라는 걸 알았다. [관련 글 : 초농기(初農記), 첫 농사의 기록] 며칠만 한눈을 팔면 풀은 마치 임자의 게으름을 비웃듯 밭고랑을 잠식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랭이 등 잡풀들의 공세에 기가 질리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새록새록 나날이 짙어지는 잡풀의 기습을 불가항력이라고 느낀다면 ‘폴과의 공존’을 선택해도 좋다. 요즘 농사꾼 가운데서는 굳이 고랑의 풀을 뽑지 않고 버려두는 경우도 흔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내는 곧이곧대로 농사일을 곁눈질하며 자란 사람이라, 풀과의 공존 따위를 입 밖에 낼 수 없다. 부지런히 틈만 있으면 놈들을 .. 2021. 7. 5.
[2021 텃밭 농사 ②] 거름 주고, 곁순 따주고…, 밭주인의 몫 1. 거름주기(5월 13일) 5월 13일에 밭에 거름을 주었으니, 모종한 지 꼭 보름 만이다. 시비(施肥)는 전적으로 아내가 판단하고 시행한다. 아내는 틈만 나면, 농사짓기 유튜브를 열심히 읽는데, 그게 농사짓는 데 얼마간은 도움이 된다고 보는 모양이다. 내가 건성으로 아내의 말을 듣고 마는 것은 그게 유튜버마다 조금씩 처방을 달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농사 일정을 따르는 거야 대동소이하지만, 병충해 방제나 작물 재배법은 저마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씩 처방이 달랐다. 고추 하나만 해도 얼마나 많은 종류의 병충해가 있는가, 진딧물과 총채벌레부터 시작하여 무름병, 탄저 등등 병충해는 수도 없는데, 이걸 잡는 비방은 저마다 다른 것이다. 글쎄, 잘은 몰라도 농사 유튜버 가운데 전문 농사꾼이 얼마나 될.. 2021. 6. 30.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쯤에 처음 만난 시로 기억된다. 시보다는 시와 관련된 몽환적 분위기에 압도되던 시절이었다. 그때를 회고한 글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애매하게나마 나는 ‘문학’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입학과 동시에 들어간 문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아’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어진 소설에만 치우친 책 읽기와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를 주제로 한 시건방진 글쓰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거짓 만족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무렵, 동아리의 친구들에게 거의 ‘바이블’로 여겨졌던 소설이 이동하의 장편, 이었다. 삼성문고로 출간(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책의 정가는 160원이다, .. 2020. 7. 11.
밀밭 속에 남긴 황홀한 젊음 - 황순원의 ‘향수’ 황순원의 초기 시 ‘향수’ 시골에도 사랑은 있다. 하긴 사람이 사는 곳인데 사랑 없는 데가 어디 있으랴! 아니다, 시골에도 로맨스가 있다고 쓰는 게 더 정확하겠다. 사람이 있고 삶이 있으니 거기 로맨스가 있는 것 역시 ‘당근’이다. 그 전원에서 이루어졌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시골의 사랑, ‘밀밭의 사랑’ 뜬금없이 ‘전원의 사랑’ 운운하는 이유는 황순원의 시 ‘향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황순원의 단편소설 ‘물 한 모금’을 공부했다. 작가를 소개하면서 나는 그가 쓴 초기 시 몇 편을 들려주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중학교 때던가, 우리 집에는 자줏빛 하드커버의 이 있었다. 거기서 읽은 그의 시 두 편이 기억에 남아 있다. ‘빌딩’이라는 한 줄짜리 시와 ‘향수’가 그것이다. ‘.. 2019. 6. 17.
5월, 보리와 보리밭 보리와 보리밭 이야기 요즘은 보리밭 보기도 쉽지 않다. 어저께 처가에 들렀다가 장모님의 비닐하우스 앞에서 정말 드물게 보리밭을 만났다. 주변은 참외 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 천진데 웬일로 보리를 심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일찌감치 팬 보리는 시방 씩씩하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늘 그렇듯 그 결과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짙푸르게 불타고 있는 보리밭을 바라보는 마음은 좀 각별하다. 짙은 초록빛은 인간의 마음에 희망과 너그러움을 환기해 주는 듯하다. 들에는 ‘보리밭’ 대신 참외 ‘비닐하우스’ 보리밭을 마주하며 느끼는 기쁨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무덤 주위에 노란 해바라기를 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시 ‘해바라기의 비명’)고 노래한 함형.. 2019.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