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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백세청풍비2

야은 길재, 삼은 가운데 우뚝한 ‘절의의 상징’ [선산 톺아보기 ⑨] 야은 길재를 기리는, 오태동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야은 길재(1353~1419)를 기리는 빗돌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는 오태동, 남구미 나들목 근처에 있다. 경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빗돌은 1587년(선조 20)에 인동 현감으로 있던 겸암(謙唵) 류운룡(1539~1601)이 길재의 묘역을 정비한 뒤 주변에 사당과 오산서원(吳山書院)을 창건하고 그 앞에 세운 비석이다. 인동현감으로 있던 류운룡이 세운 낙동강 강변의 지주중류비 1585년에 인동 현감으로 부임한 류운룡은 3년 차인 1587년(선조 20)에 길재의 높은 충절을 기리기 위한 역사(役事)를 벌였는데 이 빗돌은 그것을 매조지는 일이었다. 지금은 터만 남은 오산서원은 1609년(광해군 1)에 사액 되었으나, 대원군의 서.. 2022. 3. 11.
[순국] 곡기 끊어 순국한 독립운동가와 ‘민족가수’ 백년설 순국 111주기 자하 장기석(1860~1911) 선생을 기리며 1월 5일은 자하(紫下) 장기석(張基奭, 1860~1911) 선생의 순국 111주기였다. 1세기하고도 10년이 더 지났으니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던가. 나는 자료를 뒤져 그의 삶을 돌이켜보다가 그 주말에 성주 벽진의 집실 마을을 다녀왔다. 감옥에서 27일간 곡기 끊어 순국 선생을 알게 된 것은 2년 전, 순국 102주기를 맞은 칠곡의 독립운동가 만송 유병헌(1842~1918) 선생을 기리는 기사를 쓸 무렵이다(관련 기사 : “일왕 머리를 베었어야” 법정서 일갈한 선비의 사연). 경술국치 이후에 자정(自靖) 순국한 분 가운데서 이웃 고을 성주 출신인 선생의 함자를 발견하면서였다. 자하 장기석은 국권을 잃은 이듬해인 1911년 1월 5일.. 2022.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