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백년설 흉상2

‘혈서 지원’의 가수 백년설, ‘민족 가수’는 가당찮다 노래비 셋과 흉상으로 기려지는 성주 출신 ‘친일 부역’가수 백년설 세 번째 ‘백년설 노래비’를 만난 건 독립운동가 장기석(1860~1911) 선생의 ‘해동청풍(海東淸風)’비를 찾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 성주 읍내에서다. ‘나그네 설움’을 부른 대중가요 가수 백년설(1915~1980)이 성주 출신이라는 건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다. (관련 기사 : 곡기 끊어 순국한 독립운동가와 ‘민족 가수’ 백년설) 성주 군민의 휴식 공간인 성밖숲 공원 들머리에 군민 모금과 성주군의 지원으로 첫 백년설 노래비가 세워진 건 1992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가 적지 않은 군국가요를 불러 일제에 부역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던 때라 노래비는 말썽 없이 세워졌다. ‘백년설 가요제’로 소환된 친일 가수 백년설은 2.. 2022. 2. 9.
[순국] 곡기 끊어 순국한 독립운동가와 ‘민족가수’ 백년설 순국 111주기 자하 장기석(1860~1911) 선생을 기리며 1월 5일은 자하(紫下) 장기석(張基奭, 1860~1911) 선생의 순국 111주기였다. 1세기하고도 10년이 더 지났으니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던가. 나는 자료를 뒤져 그의 삶을 돌이켜보다가 그 주말에 성주 벽진의 집실 마을을 다녀왔다. 감옥에서 27일간 곡기 끊어 순국 선생을 알게 된 것은 2년 전, 순국 102주기를 맞은 칠곡의 독립운동가 만송 유병헌(1842~1918) 선생을 기리는 기사를 쓸 무렵이다(관련 기사 : “일왕 머리를 베었어야” 법정서 일갈한 선비의 사연). 경술국치 이후에 자정(自靖) 순국한 분 가운데서 이웃 고을 성주 출신인 선생의 함자를 발견하면서였다. 자하 장기석은 국권을 잃은 이듬해인 1911년 1월 5일.. 2022.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