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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동락서원2

여헌기념관에 고인 ‘중세(中世)의 훈향(熏香)’과 21세기 사이 [선산 톺아보기 ⑲] 중세의 대학자 여헌 장현광과 여헌기념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인동장씨 가문에서 낸 대학자 여헌 장현광 선친으로부터 여헌(旅軒) 선생 이야기를 들은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다. 이야기라고 해도 우리 집안에 그런 대학자가 계셨었다는 정도였을 뿐이었고, 나는 그의 함자도 몰랐다. ‘만회당(晩悔堂) 할배’ 이야기는 더 자주 들었으나, 역시 함자를 따로 말씀하시진 않으셨다. 여헌이 조선 중기의 대 유학자 장현광(張顯光) 선생임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철학 교재에서였다. 퇴계의 문인이 아니면서도 독자적 성리학 체계를 이룬 학자라고 소개된 글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그저 끄덕였을 뿐이다. 그의 학문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어서였는.. 2022. 11. 25.
그 서원은 여헌이 심은 4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지키고 섰다 [선산 톺아보기 ⑱] 구미시 임수동 동락서원(東洛書院)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동락서원(東洛書院)은 구미시 임수동 373번지, 낙동강 강변의 나지막한 산비탈에 자리 잡았다. 서원 앞이 아닌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긴 하지만, 전통적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좌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74년에 개통한 낙동대교가 산 앞을 성큼 막으며 공단동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도로를 지나며 서원을 굽어보며 지나야 한다. 서원이 깃들인 산은 1970년대까지 우리 집안의 선산이었다. 지금도 거기엔 우리 집안 윗대의 묘소가 10여 기 남아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한가위 전이면 나는 집안의 재종숙(再從叔), 그러니까 내 칠촌 아저씨와 함께 그 산에 .. 2022.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