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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능소화4

학교 뒷산을 오르다 깃대봉이라 부르는 뒷산 교무실의 내 자리에 앉으면 학교 강당 뒤편에 바투 붙은 산기슭이 보인다. 손을 뻗치면 닿을 듯한 산마루에는 정자 하나가 올라앉았다. 첫 출근 때부터 한번 오르리라고 별렀지만, 좀체 짬이 나지 않았다. 주당 꽉 찬 스물다섯 시간, 두 시간을 달아서 쉬는 시간도 거의 없는 탓이다. “저 산, 이름이 뭐지요?” “글쎄요……, 그냥 ‘뒷산’이라고 하지요.” “얼마나 걸리지요?” “1시간이면 됩니다. 괜찮은 산입니다.” 산 이름을 물으니 당혹스러워한다. 간단히 ‘뒷산’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건 워낙 나지막한 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사는 동네의 뒷산인 북봉산이나 인근 원호리 부근의 접성산 줄기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자리에 이 산은 솟아 .. 2022. 4. 20.
[2021 텃밭 농사 ④] 거름주기와 약 치기 사이… 1. 거름주기와 수확(6월 28일) 첫 수확을 하고 엿새 뒤다. 이제 우리 고추밭은 제법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낸 고랑을 사이에 두고 고춧대는 열매를 다닥다닥 달고 있다. 밭 주인의 눈에는 마치 딱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는 실팍한 장정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거기 달린 고추의 크기나 굵기가 예사롭지 않다. 풋고추로 먹으려고 한 줌을 따 집에 와 재어 보니 15cm 가까이 되었다. 아마 20cm 가까이 자라는 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난해 우리가 고춧가루 스무 근을 이룬 것은 전적으로 이처럼 크고 굵은 고추의 품종 덕이다. 이게 장모님이 지은 부촌 고추가 아닌가 싶다. [관련 글 : 장모님의 고추 농사] 내가 건성으로 밭을 둘러보며 사진기를 가져가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동안, 아내는 알.. 2021. 7. 9.
[2021 텃밭 농사 ③] 텃밭 농사도 ‘심은 대로 거두기’는 매일반 1. 풀매기(6월 5일) 지지대를 세워준 게 5월 26일, 열흘 만에 텃밭에 들르니 고랑마다 돋아난 풀이 말이 아니다. 일찍이 첫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나는 텃밭 일이 풀과의 씨름이라는 걸 알았다. [관련 글 : 초농기(初農記), 첫 농사의 기록] 며칠만 한눈을 팔면 풀은 마치 임자의 게으름을 비웃듯 밭고랑을 잠식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랭이 등 잡풀들의 공세에 기가 질리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새록새록 나날이 짙어지는 잡풀의 기습을 불가항력이라고 느낀다면 ‘폴과의 공존’을 선택해도 좋다. 요즘 농사꾼 가운데서는 굳이 고랑의 풀을 뽑지 않고 버려두는 경우도 흔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내는 곧이곧대로 농사일을 곁눈질하며 자란 사람이라, 풀과의 공존 따위를 입 밖에 낼 수 없다. 부지런히 틈만 있으면 놈들을 .. 2021. 7. 5.
능소화, 돌담에 기대어 등을 내 거는 꽃 능소화, ‘금등화(金藤花)’, ‘양반꽃’이라고 불리는 꽃의 계절 능소화(凌霄花)의 계절이다. 한여름엔 꽃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능소화는 다른 꽃들이 더위에 지쳐 허덕이고 있을 때 담장을 타고 하늘로 기어올라 주황색 고운 꽃을 피우는 것이다. ‘능소(凌霄)’란 ‘하늘을 뚫고 치솟아 오르다’의 뜻이다. 한여름 땡볕 속에 지치지도 않는 듯 하늘을 향해 휘감아 오르는 능소화의 모습에서 그런 이미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능소화는 달리 ‘금등화(金藤花)’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등나무와 비슷하지만, 훨씬 아름다운 꽃을 피우니 ‘금(金) 자’를 붙여 금등화라 부른 것이다. 능소화는 꽃이 질 때도 깔때기 모양의 꽃송이가 시들지 않고 싱싱한 상태로 쏙 빠져서 아주 깔끔하게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빛깔이나 모양.. 2019.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