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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낙선재2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⑦] 창덕궁, ‘후원’을 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궁 산책 ③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昌德宮)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창덕궁을 찾은 건 덕수궁과 창경궁을 들르고 난 이듬해인 2019년 2월이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내겐 서울의 고궁 가운데 가장 낯선 이름이 창덕궁이다. 창덕궁의 후원(後苑)인 ‘비원(祕苑)’은 알아도 창덕궁은 몰랐다. 아마 창덕궁보다 비원이라는 이름이 독립적으로 뉴스 같은 데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원(祕苑)’으로 먼저 안 궁궐 창덕궁, 경복궁과 ‘양궐 체제’ 비원은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들렀을 것이지만, 나는 그걸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 무분별하게 전면 개방해 왔던 비원은 훼손이 심하여 1970년대 후반에 복원사업.. 2023. 1. 29.
[오늘] 조현병, 딸의 실종, 이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 [역사 공부 ‘오늘’] 1962년 1월 26일, 덕혜옹주 38년 만의 환국 1962년 1월 26일, 소학교 5학년이던 1925년에 볼모로 일본에 끌려갔던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1912~1989)가 3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외로움과 향수 때문에 조발성 치매증을 앓던 이덕혜는 대마도(對馬島) 번주(藩主)의 아들 소 다케시(宗武志)와 강제 결혼했다가 이혼당한 뒤에야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지막 황녀, 38년 만에 귀국하다 나라를 잃은 왕족들의 삶은 그들 조국의 운명처럼 파란만장했다. 이들의 삶 앞에 ‘비운’이라는 형용이 관습적으로 쓰이는 이유다. 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지만, 고종(1852~1919)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강제퇴위 당했고, 그 아들 순종(1874~1926)은.. 2019.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