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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광화문2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⑧] ‘일제의 만행’ 지우고 되살린 ‘조선 제일의 법궁’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고궁 산책 ④ 고난의 근대사 간직한 ‘조선 제일의 법궁’ 경복궁(景福宮) 경복궁을 처음으로 찾은 건 1966년, 초등학교 4학년 때 6학년 언니들을 따라 수학여행을 갔을 때였을 것이다. 서울 수학여행을 6학년만으론 운영하기 어려웠던 시골 학교에선 형편이 괜찮은 4, 5학년들도 설득해서 데려갔는데, 나는 거기 낀 것이었다. 그러나 창경원 동물원에 갔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을 뿐, 내겐 경복궁이나 동물원에 관한 기억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다. 1974년 고3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서울로 갔을 때도 경복궁에 한 번쯤 들렀을 수도 있지만, 그 기억도 역시 가물가물하다. 서울에 어떤 연고도 없는 지방 사람이 상경하는 일은.. 2023. 6. 6.
‘아띠’? 광화문, 혹은 세종대왕 수난기 광화문 현판 논란과 근처에 들어선 국적불명의 ‘아띠’ 광화문광장이라곤 딱 한 번 가 봤다. 지난해 1월 말께였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누굴 만나느라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거기 만만찮은 크기의 세종대왕 동상이 딱 버티고 있었다. 나중에야 그게 광화문광장이었구나 했던 것이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을 이해하는 건 늘 그런 방식인 모양이다. 세종대왕은 뒤편으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등지고 꽤 높은 좌대에 앉아 있었다. 세종임금은 반대편에 칼을 집고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광화문광장의 상징 같아 보였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두 분 임금과 장수가 경복궁을 등지고 앞뒤로 앉고 서 있는 모습은 괜찮은 그림 같다. 논란의 중심이 된 ‘광화문 현판’ 세종대왕과 그 뒤편의 광화문은 지난해부터 꽤 긴한 뉴스거리였.. 2021.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