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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고은 시2

‘생명’마다 한 ‘우주’, 그 탄생을 위한 ‘인고’의 시간 … 고은의 시 ‘열매 몇 개’와 ‘그 꽃’ 열매 몇 개 1994년 봄, 중학교 3학년 국어 시간에 아이들에게 고은의 시 ‘열매 몇 개’를 가르쳤다. 1989년 해직되어 5년 만에 복직한 경북 북부의 궁벽한 시골 학교에서였다. 모두 7학급의 단설 중학교였는데, 인근에 있는 공군 전투비행단에서 들려오는 항공기 엔진 소음 피해가 심각했지만, 산비탈에 깃들인 교정이 아름다운 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이태 동안 근무하면서 만난 순박한 시골 아이들은 지금도 잘 잊히지 않는다. 5년여 만에 복직하긴 했는데, 쉬 적응하지 못해 헤매던 시기였다. 나는 일과가 끝나면 아이들과 어울려 배구와 농구 등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고은의 ‘열매 몇 개’는 처음 만나는 시였지만, 나는 단박에 이 시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2022. 10. 25.
초가을, 산, 편지 초가을, 북봉산에서 초가을, 산 아직 ‘완연하다’고 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이미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은 모두가 안다. 그것은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새삼 실존적으로 환기해 준다. 어쩔 수 없이 가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기 삶의 대차대조표를 들이대기엔 아직은 마뜩잖은 시간이지만. 아침저녁은 서늘한 반면 한낮엔 아직 볕이 따갑다. 그러나 그것도 ‘과일들의 완성’과 ‘독한 포도주’의 ‘마지막 단맛’(이상 릴케 ‘가을날’)을 위한 시간일 뿐이다. 자리에 들면서 창문을 닫고, 이불을 여며 덮으며 몸이 먼저 맞이한 계절 앞에 한동안 망연해지기도 한다. 늦은 우기에 들쑥날쑥했던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공기가 찬 새벽을 피해 아침 8시 어름에 집을 나선다. 한여름처럼 땀으로 온몸을 적실 일은 없지만, 이마에 흐.. 2021.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