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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거기2

시인은 생각의 길마저 끊어진 그 ‘높고 푸른 거기’ 가고 싶다 김지섭 시집 『어디 어찌 그것뿐이랴』 김창환 선생 10주기 추모식에서 김지섭 선생을 뵈었다. 2019년 5월, 내 출판 기념회에 와 주셔서 뵙고 어언 4년 만이다. 선생님은 김창환 선생보다 2년 위시니 우리 나이로 일흔일곱, 내게 9살 연상이시다. 언제나처럼 차분해 뵈는 모습이었으나, 여든에 가까이 이른 세월의 자취는 지우기 어려운 듯했다. 경황 중에 하직 인사도 못 드리고 돌아왔는데, 그날 밤 지난해 낸 시집을 보내주겠다면서 전화를 주셨다. 그리고 며칠 후에 우편으로 시집이 왔다. 그러나 시집을 받아놓고도 며칠 동안이나 책을 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시를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아서였다. ‘시 읽기’의 어려움, 혹은 그 준비 대체로 문학도들은 시를 끄적이면서 문학에 입문하는 듯하지만, .. 2023. 3. 17.
‘고객님’에서 ‘사장님’까지 - 우리말의 ‘호칭’ 생각 두루뭉술한 우리말의 ‘호칭어’ 접객업소나 가게 따위에서 ‘사장님’으로 불린 경험은 중년 이후의 남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글쎄, 그런 호칭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이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실 ‘사장’과는 무관한 사람이 그런 호칭을 들어야 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런 호칭을 선택한 것은 일종의 예우다. 그가 사장이든 아니든 그건 별문제가 아니다. 이 호칭은 본인의 지위와는 무관한 ‘말치레(립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장’으로 불린 사람이 이걸 가지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껏해야 지나가는 말로 ‘나 사장 아닌데…….’ 하고 얼버무리는 게 고작인 것이다. 사장님, 아버님… 나는 집 앞의 이용소에서 10여 년 가까이 ‘사장님’이란 호칭으로 불리었다. 상.. 2020.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