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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지역 반대 집회 반대! ‘전선’은 남하 중?

by 낮달2018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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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상주보 현장을 돌아보고

▲ 4대강 저지운동에 맞서 현지 지자체와 주민들은 맞불을 놓고 있다. 주민 일동이라고 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일까.

바야흐로 이른바 ‘4대강 전선’은 남하(혹은 북상) 중인가 보다. 4대강 저지 운동은 경기도 이포보와 경남 함안보에서 환경운동가들의 고공농성으로 새 국면에 접어드는가 싶었다. 그러나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태풍 덴무를 앞두고 함안보에서 농성하던 운동가들이 부득이 철수한 게 엊그제 일이다.

 

목숨을 건 환경운동가들의 고공농성에 대해 맞불을 놓은 건 현지 지자체와 주민들이다. 지금까지 보도된 데 따르면 이들의 대응은 단순히 ‘맞불’ 정도가 아니라 ‘패악’ 수준인 듯하다. 거름 뿌리고, 차 유리 부수고, 폭행이 그야말로 ‘공공연하게’ 저질러진다. ‘공공연’하다는 것은 현장에 경찰의 ‘수수방관’도 함께하기 때문이다.

 

어제 안동에서 상주까지 낙동강을 따라 버스를 타고 돌아보았다. 줄곧 비가 내렸고 다른 목적의 여정이어서 따로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반나절 남짓 돌아본 낙동강 주변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헤쳐져 있었다. 곳곳에 준설토가 쌓여 있었고, 풍경은 낯설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마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4대강 찬성’, ‘반대 집회에 대한 반대’ 펼침막이 일제히 걸려 있었던 점이었다. 아마 이포보와 함안보에서 전개되고 있는 ‘4대강 저지 운동’이 현지로 확산하는 것을 대비하는 것 같았다.

 

“우리 고장에서 타지역 단체 반대집회를 더 이상 원치 않습니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 성공 녹색 선전 KOREA”

 

위의 것은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지역의 ‘이장협의회’ 명의로, 아래 것은 회룡대로 오르는 장안사 주차장에 지역 ‘의용소방대’ 이름으로 걸려 있었던 펼침막에 쓰인 글귀다. ‘타 지역 단체 반대 집회’가 무얼 뜻하는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일찌감치 지역에서의 4대강 반대 움직임을 막아내자는 사전 대비인 모양이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강을 따라 계속되고 있는 공사장 인근마다 비슷한 내용의 글귀가 일제히 걸린 걸 보면서 일행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꿎은 지역 주민들 모두를 도매금으로 넘기는 ‘주민 일동’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 내성천 상류에 영주댐이 건설되면 회룡포는 이 절경을 잃을 수도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회룡포(위)와 뿅뿅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 상주보 건설 현장. 가동보 완성 등 현재 공정은 35%라고 한다.
▲ 국토 순례 중인 농민들. 그는 고개 숙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중간에 회룡포에 들렀다. 여전히 이 물돌이 마을은 아름다웠다. 백사장으로 둘러싸인 동화 같은 마을,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볏논의 빛깔이 유난히 새파랗다. 여름이라 수량도 넉넉해 보인다. 그러나 내성천 상류에 영주댐(송리원댐)이 건설되면 이 아름다운 풍경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송리원댐의 건설도 ‘대구·경북 구간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이다. 댐이 건설되면 ‘모래밭이 풀밭으로 변하는 육(지)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댐으로 모래 유출이 막히면 회룡포 경관의 핵심인 백사장으로의 모래 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정의 마지막은 상주, 상주보 현장이었다. 현재 35%의 공정을 기록하고 있는 현장에는 가동보가 완성되어 있었다.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 표면에 ‘관리 수심 47m’라는 페인트 글씨가 선명했다. 방문자들을 의심스레 바라보던 현장 관리자들과 짤막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관리 수심이 47m라는 건 깊이가 그렇다는 뜻인가요?”

“아뇨. 해발 개념입니다. 여기는 36m부터 시작하지요.”

“그럼 10m가 조금 넘는 셈이네요……. 그러면 ‘보’가 아니라 ‘댐’이 아닌가요? 소수력발전도 함께 한다니 더더욱 그렇고요.”

“글쎄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여러 목적의 ‘보’라고 봅니다.”

 

현장에 들른 전국농민회총연맹의 국토 순례 행진단도 만났다. 가슴과 등에 붙은 몸자보에 쓰인 ‘민족에게 평화를, 농민에게 희망을’ 이라는 구호가 공연히 마음이 저렸다. 나날이 떨어지는 쌀값으로 타들어 가는 농민들의 가슴을 위해서라도 대북 쌀 지원은 재개되어야 한다.

 

덴무가 지나간 뒤끝인가, 보 옆으로 싯누런 황톳빛 거품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강을 위해 싸우지만 정작 사람들은 강에 위로를 받는다’고 한 이가 누구였던가. 습기 머금은 후덥지근한 열기를 가르며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강을 떠났다.

 

 

2010. 8.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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