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5 텃밭 농사] ④ 해마다 하는 수확이지만, ‘감동’은 ‘처음 그대로’다

낮달2018 2025. 6. 25.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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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캐기(2)

▲ 근 100여 일을 땅속에서 난 우리 감자가 햇볕 속으로 나왔다. 게으른 주인 만나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으나, 감자는 제 몫을 다했다.
▲ 제대로 보살피지도 못한 우리 감자는 저혼자 자라 이렇게 임자를 감동케 했다. 우리가 그간 지은 감자 농사 중 제일 낫지 않나 싶다.

집을 나설 때 미리, 한 고랑만 파보고, 씨알만 보겠다고 첫 감자 캐기가 이루어졌다. 뜻밖에 양은 떨어지지만, 씨알의 굵기가 예년보다 좋은 듯해(물론 이는 실제라기보다 단순한 ‘느낌’일지 모른다) 게으른 밭 임자 입이 딱 벌어졌다는 얘긴 지난번에 했었다. [관련 글 : 심고 거름 한 차례 준 게 다인데, 감자 캐기(1)]


염천에 못 다한 감자 수확

▲ 즐겨 먹는 감자채볶음. 이제 혈당 관리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지만.


감자의 굵기가 괜찮아서 마저 캘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 이랑 수확으로 작업을 접은 것은, 드문드문 내리던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기 시작해서였다. 우리는 라면 상자보다 좀 작은 상자에 한 상자 가득 담은 감자를 들고 득의양양 귀가했었다. 그날 저녁 반찬으로 식탁에 오른 감자채볶음을 먹으면서 나는 우리들 노동의 의미를 생각했었다.

 

다음 주 수요일쯤 와서 마저 수확하기로 했는데, 상황이 좀 달라져서 어제(23일) 오후 3시가 넘어 텃밭을 찾았다. 화요일 오후부터 장맛비가 다시 온다고 했고, 그리고 마땅히 내외가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없어서였다. 기온은 31도를 진작에 넘었지만, 우리는 금방 끝내겠다고 밭에 들어갔다.

▲ 흔히 '작업방석'이라고 부르는 저 농사용 의자는 정말 유용하다. 언제나 일할 때는 저 놈을 찾아 들고 나서게 되었다.
▲ 햇감자가 바로 햇볕을 받으면 표면이 녹색으로 변하면서 솔라닌이라는 독성물질을 생성한다. 그래서 캐낸 감자는 감자 줄기로 덮어놓았다.
▲ 올해 지은 가자는 오리온 제과에서 만든 품종이 '두백'이다. 전분 함량이 높아 쪘을 때 포슬포슬한 식감이 특징인 감자 품종이라고 한다.
▲ 제대로 된 이랑이라면 10m 정도의 길이밖에 되지 않은 우리 텃밭의 감자는 그러나, 제몫을 다해 근 백일 만에 햇빛을 보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날이 심상찮았다. 묵은 밭에서 감자를 캐던 아내가 더위를 먹었는지 기진맥진해 늘어지려 하기에 방에 들어가 쉬게 하고 혼자서 일을 이어갔다.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온도가 온도인지라, 차양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머리끝에서 땀이 마치 물 흐르듯 흘러내렸다.

아내는 더위 먹어 늘어지고

생각 같아서는 나도 방에 들어가 드러눕고 싶었지만, 서둘러 일을 끝내야 했다. 나는 아내가 캐던 묵은 밭의 감자를 캔 다음에 새 밭의 남은 이랑을 파기 시작했다. 5시가 겨울 무렵에야 겨우 수확을 끝냈다. 가져간 빈 종이상자 하나에는 담았고, 다른 상자는 찢어져서 가져간 푸른 색 배추 망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지난번 얘기했듯 감자는 심고 나서, 아내가 비료를 한 번 준 게 고작이다. 물 한 번 주지 않았으며, 5월에는 두둑을 만들어 주자고 해놓고 정작 우리는 한 번도 두둑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두둑은 물 빠짐과 햇빛이 투과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간격과 높이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우린 그걸 빼먹은 것이다.

▲ 우리가 지은 감자 농사. 중간 크기 이상의 종이상자 둘에 가득 찰 정도다.
▲ 집에 가져온 감자는 지난번과 달리 뒷베란다에 내다 말리고 있다. 햇감자는 햇볕을 받으면 녹색으로 변하며 독성물질을 생성한다고 한다.

부족한 듯 그러나 만족스러운 올 감자 농사

그래서인지 모른다. 감자를 캐면서 보니, 씨알은 그나마 굵은 게 더러 있는데, 감자 개수가 부족했다. 주먹만 한 굵기의 감자를 캐면서 희열을 느끼지만, 그런 거 한두 개 외엔 중간 크기 몇 개, 그리고는 전부 다 엄지와 검지로 만드는 동그라미만 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크기에 불만을 주절댈 계제가 아니다, 노는 땅에 심어서 이 정도로나마 거두어 먹을 수 있는 게 장하고 감사한 일이었으니.

 

마지막으로, 감자를 캐낸 밭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우리는 곧바로 귀가했다. 더위에 지친 데다가 허기가 몰려와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서였다. 씻고 저녁을 먹은 뒤, 정신을 수습하여 아내는 뒷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감자를 거기로 옮겼다. 흙이 묻은 채로 말리자는 건데, 지난번에는 앞 베란다에서 하더니 이번에는 볕이 들어서 안 되겠다고 하며 장소를 옮긴 거였다.

 

하루나 이틀쯤 뒤에는 마른 감자들은 아내가 마련해 놓은 종이상자 속에 보관되면서 당분간 우리 집 식탁을 넉넉하게 해 줄 터였다. 마침, 친구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짓는 후배가 캤다며 크고 잘 생긴 양파 한 자루를 가져다주었다. 이래저래 올여름은 넉넉한 감자와 양파로 더위를 이겨볼 일이다.

 

 

2025. 6. 24. 낮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