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텃밭 농사] ④ 해마다 하는 수확이지만, ‘감동’은 ‘처음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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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캐기(2)
집을 나설 때 미리, 한 고랑만 파보고, 씨알만 보겠다고 첫 감자 캐기가 이루어졌다. 뜻밖에 양은 떨어지지만, 씨알의 굵기가 예년보다 좋은 듯해(물론 이는 실제라기보다 단순한 ‘느낌’일지 모른다) 게으른 밭 임자 입이 딱 벌어졌다는 얘긴 지난번에 했었다. [관련 글 : 심고 거름 한 차례 준 게 다인데, 감자 캐기(1)]
염천에 못 다한 감자 수확
감자의 굵기가 괜찮아서 마저 캘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 이랑 수확으로 작업을 접은 것은, 드문드문 내리던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기 시작해서였다. 우리는 라면 상자보다 좀 작은 상자에 한 상자 가득 담은 감자를 들고 득의양양 귀가했었다. 그날 저녁 반찬으로 식탁에 오른 감자채볶음을 먹으면서 나는 우리들 노동의 의미를 생각했었다.
다음 주 수요일쯤 와서 마저 수확하기로 했는데, 상황이 좀 달라져서 어제(23일) 오후 3시가 넘어 텃밭을 찾았다. 화요일 오후부터 장맛비가 다시 온다고 했고, 그리고 마땅히 내외가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없어서였다. 기온은 31도를 진작에 넘었지만, 우리는 금방 끝내겠다고 밭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래도 날이 심상찮았다. 묵은 밭에서 감자를 캐던 아내가 더위를 먹었는지 기진맥진해 늘어지려 하기에 방에 들어가 쉬게 하고 혼자서 일을 이어갔다.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온도가 온도인지라, 차양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머리끝에서 땀이 마치 물 흐르듯 흘러내렸다.
아내는 더위 먹어 늘어지고
생각 같아서는 나도 방에 들어가 드러눕고 싶었지만, 서둘러 일을 끝내야 했다. 나는 아내가 캐던 묵은 밭의 감자를 캔 다음에 새 밭의 남은 이랑을 파기 시작했다. 5시가 겨울 무렵에야 겨우 수확을 끝냈다. 가져간 빈 종이상자 하나에는 담았고, 다른 상자는 찢어져서 가져간 푸른 색 배추 망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지난번 얘기했듯 감자는 심고 나서, 아내가 비료를 한 번 준 게 고작이다. 물 한 번 주지 않았으며, 5월에는 두둑을 만들어 주자고 해놓고 정작 우리는 한 번도 두둑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두둑은 물 빠짐과 햇빛이 투과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간격과 높이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우린 그걸 빼먹은 것이다.
부족한 듯 그러나 만족스러운 올 감자 농사
그래서인지 모른다. 감자를 캐면서 보니, 씨알은 그나마 굵은 게 더러 있는데, 감자 개수가 부족했다. 주먹만 한 굵기의 감자를 캐면서 희열을 느끼지만, 그런 거 한두 개 외엔 중간 크기 몇 개, 그리고는 전부 다 엄지와 검지로 만드는 동그라미만 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크기에 불만을 주절댈 계제가 아니다, 노는 땅에 심어서 이 정도로나마 거두어 먹을 수 있는 게 장하고 감사한 일이었으니.
마지막으로, 감자를 캐낸 밭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우리는 곧바로 귀가했다. 더위에 지친 데다가 허기가 몰려와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서였다. 씻고 저녁을 먹은 뒤, 정신을 수습하여 아내는 뒷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감자를 거기로 옮겼다. 흙이 묻은 채로 말리자는 건데, 지난번에는 앞 베란다에서 하더니 이번에는 볕이 들어서 안 되겠다고 하며 장소를 옮긴 거였다.
하루나 이틀쯤 뒤에는 마른 감자들은 아내가 마련해 놓은 종이상자 속에 보관되면서 당분간 우리 집 식탁을 넉넉하게 해 줄 터였다. 마침, 친구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짓는 후배가 캤다며 크고 잘 생긴 양파 한 자루를 가져다주었다. 이래저래 올여름은 넉넉한 감자와 양파로 더위를 이겨볼 일이다.
2025. 6. 24. 낮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