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윤석열의 ‘망상’과 ‘패악’으로 망가진 것들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의 패착, 그리고 2025년 한국
내란수괴 혐의로 구속되어 탄핵 심판을 받으며 형사재판을 윤석열이 취임 100일을 맞았을 때다. 유시민 작가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를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라고 비유하면서 “코끼리가 한 번 돌 때마다 도자기가 아작 난다, 그 비슷한 상황 아닌가”라고 말했었다.
도자기 박물관 안에 들어온 코끼리, 박물관을 망가뜨렸다
요즘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그의 모든 의견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비유는 정말 옛날 말로 ‘정곡’을 찌른 게 아닌가 싶다. 이 비유의 전제는 코끼리는 ① 도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② 힘이 세다, ③ 무심한 발길에도 근처 도자기는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 ④ 도자기를 안전하게 지키려면 방법은 하나뿐, 코끼리가 스스로 박물관 밖으로 나가거나, 끌어내어야 한다는 등이다.
2년 반이 지나면서 이 비유는 끔찍한 현실이 되었다. 그는 “혼란을 초래하는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라며 헌법에 반하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내란수괴로 탄핵, 구속되어 지금 직무 정지 상태로 탄핵 심판을 받고 있다. 2년 반 동안이었지만, 그가 재임한 시기에 나라는 그야말로 ‘아작’이 났다고 할 만큼 망가져 버렸다.
윤석열과 행정부, 그리고 여당이 함께 망가뜨린 건 크게는 ‘민주주의’고 ‘시스템’인데, 그 책임은 물론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날마다 중계되는 헌재 심판에서 구치소에서, 국회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언행을 보면 책임은커녕 저열하고 비겁한 변명과 ‘남 탓’만이 넘칠 뿐이다. 이쯤 되면 2년 넘게 이 나라가 결딴나지 않고 유지되어 온 게 다행일 지경이다.
대부분 국민이 윤석열의 내란을 규탄하면서 그의 탄핵 심리가 가결되고, 중형을 선고받아 죗값 치르기를 원하지만, 물론 윤과 국힘을 지지하는 국민도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 극우 세력이 벌이는 난동과 패악은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내란 동조 국회의원들과 극우세력의 난동
대부분 상식적이고 선량한 시민들은 윤석열이 벌인 반헌법적인 비상계엄령 선포와 이어진 상황들, 국민의 지지에 편승한 국힘 의원들이 내란에 동조하고 국가 사법 시스템을 부정하는 행태 등과 함께 이들의 패악질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민주주의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대다수 국민은 민주주의를 학교에서 배우긴 했지만, 그런 교과서 속 민주주의보다 우리 현대사에 점철된 온갖 형태의 독재와 공포 정치, 그리고 자기희생을 불사하고 그에 맞서온 민주주의 운동가들의 투쟁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배웠다. 일종의 ‘반면교사’인 셈이다.
이번 불법 계엄령 이후 펼쳐진 시민의 저항이 이어지면서 2, 30대 청년들이 대거 합류하고, 이들이 사회적 연대에 대한 자각을 새롭게 하는 등 감동적인 후일담이 이어졌는데, 이는 45년 만에 재현된 비상계엄 상황에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반면교사로 민주주의를 배운다. 말하자면 ‘산교육’인 셈이다.
군 복무 중인 1978년 총선거 때 처음 투표하면서 나는 주권자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보수의 성지라는 경상북도에 살면서 나는 한 번도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는 걸 제대로 보지 못했다. 처음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1997년 대선 이후에 말하자면 비로소 선거의 효용감 비슷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로 진보 정부가 이어졌다가 그다음 대선에서 다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정권 창출에 실패한 게 조금 아쉽긴 했어도 나는 이제 정권과 무관하게 민주주의가 정착 단계에 들어간 거라고 생각했었다. 설마 지금까지 이루어진 민주적 성과가 있는데 그게 퇴행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서였다.
반면교사로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익히는 청년과 시민들
그러나 내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소고기 정국에 켜진 촛불 시위를 생각해 보라. 나는 지나치게 순진했던 것일까, 그나마 이명박 정부는 여론에는 귀를 기울이는 척이라도 했다. 다음 대선에서 당선한 박근혜는 거기서 더 나가더니 결국은 촛불혁명으로 무너졌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하게 된 문재인 정부가 좀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실정 끝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설 때 나는 이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무능, 무책임, 무대책, 무신 등 흠결이란 흠결은 모두 다 갖춘 완벽한 부실 정권이 윤석열 정부였다.
대통령 취임식 연설 때부터 알아봤다. 부실하기로 치면 역대 최악의 연설문인데, 나는 담당 비서관의 의견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본인 만의 개똥철학을 무식하게 펼쳐놓은 거로 생각했다. 무식한 것은 차라리 교정의 여지가 있지만, 무식하면서도 자신이 유식하다고 착각하는 자에겐 대책이 서지 않는다. 그랬다. 1시간에 55분을 혼자서 떠드는 게 대통령 윤석열의 모습이었다니 최소한 참모의 조력이나 보좌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위험한 권력의 등장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윤석열이 자신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자를 장관으로 임명하고, 기자들에게 “이렇게 훌륭한 장관들 봤냐”라며 으시대는 모습이다. 객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가 없는데도,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대통령이 된 게 실수거나 사고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방 소도시의 검찰 지청장으로 ‘대장질’하면서 좋아하는 술자리니 이어가면 딱 어울렸을 위인에게 ‘대통령’이란 권력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통령과 함께 망가진 국가기관들(감사원, 인권위, 방통위, 권익위)
윤 정부의 시스템이 고장 난 사례는 일일이 들기조차 힘들 만큼 많다. 그 첫 사례가 감사원이었다. 독립기관인 감사원의 수장이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원 기관”이라고 발언할 때부터 알아봤다. 결국은 지금까지 전 정권 정책 감사에 올인해 마치 사정기관처럼 되어버린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 때 인권위원회 꼴이었다. [관련 글 : 공정성 잃은 감사원…엠비(MB) 때 그 기관이 떠오른다]
현 감사원은 마치 무슨 싸움꾼이나 돌격대원을 연상케 하는 사무총장을 앞세워 독립기관으로서 감사가 아니라, 정권의 청부 감사라는 의혹을 받는 감사에 골몰했다. 그래서 감사원장이 말한 대로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는 어리석음을 범한 점은 변명이나 용서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권익위원회, ‘대통령 부부의 명품 수수 문제 없다’라고 밝힌 국민권익위는 반부패 총괄기관으로서의 자격과 위상을 스스로 내동댕이쳤다. 대통령과 가까운 변호사를 권익위원장이 되더니 곧 방통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권익위 부위원장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으로 갈아타는 상황이 이어지자, 국회에서 ‘권익위는 방통위 인큐베이터인가’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부패방지국장의 죽음까지 이어지면서 권익위는 왜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기관이 되었다.
방통위는 또 어떤가.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되긴 했지만, 이진숙 위원장은 독립성과 중립성에서 의심스러운 인물이다. 현직 방송에 있을 때 노조 와해 공작 등이 지적되고, 민주화운동 혐오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법인카드 유용 혐의에 극우 유튜브에 출연하여 동조 발언을 이어가는 등 방송위원회는 한낱 현 정권의 방송장악을 위한 하수인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리고 이번엔 인권위다. 아시아에서 가장 앞서가는 인권위로 알려졌던 국가인권위도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의 식물 인권위는 차라리 낫다. 그저 권력을 편드는 데 골몰하는 자격 미달의 인권위원들 때문에 인권위 직원들도 부끄러움을 호소하곤 한다.
대통령도 약자라 방어권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문제의 인권위원회는 “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고 “대통령은 약자”라며 내란 수괴 윤석열의 ‘방어권 보장’을 의결하는 황당한 풍경을 연출했다. 인권위 직원들이 이를 규탄하고 야당에서는 인권위 사망을 선포하기에 이른 이 상황 앞에서 더는 시스템이니 민주주의를 이르기 어려워졌다.
다시, 헌재 심판을 받는 윤석열은 내란에 대한 자신의 책임은커녕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냐, 경고성 계엄일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둥 턱도 없는 궤변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거기다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 내란에 종사한 군인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등 뻔뻔함과 무책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구질구질하고 구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에 최근 어느 은행에서 일어난 강도미수 사건과 관련하여 누리꾼들의 조롱이 이어졌다. 10일 부산에서 장난감 물총을 사용한 강도가 2분 만에 붙잡힌 가운데 이를 윤석열의 ‘경고성 계엄’ 주장에 빗댄 댓글이 엑스(X·옛 트위터) 등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관련 기사 : 공룡 물총 강도에 “계몽강도” “2분짜리 강도가 어디 있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분짜리 은행강도가 어디있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동한 것이다.
호수에 비친 달빛 그림자 잡는 꼴 아닌가?
구속은 취소되어야 한다.
천원한장 도둑맞지 않았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장난감 총은 합법적으로 구매 했고 다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경고의 행동이었다.
돈을 담으라는 지시를 당연히 따르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다.
금융권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랬다.
자기 책임은커녕 야당과 부하 탓만 하는 권력자
그리고 마침내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재판에서 12·3 내란 사태 당시를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에게 폭행당하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육참총장을 비롯하여 특전사, 방첩사, 정보사, 수방사 등 사령관들이 그의 명령을 수행하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된 상황에서 그는 이들에 대한 자기 책임은커녕,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며 야당과 부하 탓하기에 여념이 없다.
윤석열이 ‘오직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한 국민은 최악의 경제 상황에 몰려 있는데, 여당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하고 그의 탄핵을 반대하는 등 윤석열만 감싸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서부지법에서 폭동을 자행한 극우 탄핵 반대 세력들이 어디서 난동을 부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을 애국 청년이라며 기리고 있는 이들은 오직 자신의 이해만 앞세우는 정치적 모리배일 뿐인가.
한시라도 빨리 헌재에서 탄핵이 가결되고, 윤석열이 내란죄 형사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는 등의 정치 일정이 이어지는 걸 시민들이 기대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이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이제 우리 정부도 중심을 잡고 거기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가 아닌가 말이다.
2025. 2. 12. 낮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