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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화장3

흙, 혹은 나무로 돌아가기 장인어른 1주기에 어제는 장인어른의 1주기였다. 고인과 동기간인 처숙(妻叔)과 고모 두 분이 각각 부산과 대구에서 달려왔다. 어차피 각별한 슬픔 따위를 느끼기에는 모인 사람들이 산 세월이 만만찮았다. 처삼촌과 큰 처고모는 일흔이 넘었고, 작은 처고모도 올해 회갑이다. 간단한 추도회를 마치고 다리가 불편한 장모님을 뺀 일가가 마을 뒤의 선산에 올랐다. 올해 중학 2학년이 될 하나뿐인 친손자가 씩씩하게 앞장을 섰다. 고인에게는 무덤이 없다. 고인보다 몇 해 전 세상을 뜨신 어머님의 산소, 그 발치 아래 선, 키 큰 소나무 아래 당신의 뼛가루가 뿌려졌다. 한 해 동안 이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지나간 눈과 비바람 가운데서 그것은 녹아 기쁘게 흙 속에 스며들었으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장.. 2019. 11. 18.
배웅, 다시 한 세대의 순환 앞에서 장모 이상선 여사(1934~2015. 10. 17.)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지지난 토요일이다. 창졸간에 맞닥뜨린 당신의 죽음 앞에서 가족들은 당혹을 쉬 떨치지 못했다. 서럽게 통곡하는 아내를 달래면서 나는 뜻밖에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에 놀랐다. 나는 마치 미리 준비해 왔던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이고 장례의 전 과정을 챙겼다. 장모상을 치르며 맏사위 노릇 이전에, 이미 나는 내 부모님과 맏형님, 그리고 장인어른까지 가족들의 임종을 잇달아 겪어온 바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진작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깨우쳐 버린 것이다. 여러 개의 장례식장이 경쟁하면서 예전처럼 바가지 상술로 욕을 보는 일은 없어졌다. 병원 부속 .. 2019. 10. 29.
화접도(花蝶圖), 혹은 욕망의 끌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화접도’ 고운 쥘부채를 사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쥘부채를 하나 샀다. 중앙박물관은 처음이었다. 전국교사대회에 참석하기 전 우리 지회는 박물관에서 두어 시간을 보냈다. 일부는 ‘파라오 특별전’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박물관 전시실을 순례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중앙박물관을 찾으리라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정작 잠시 들른 박물관에서 나는 좀 어정쩡했다. 아예 박물관 구경을 목표로 한 걸음이 아니었던 탓이다. 나는 동행한 역사 전공의 후배 교사를 길라잡이 삼아 그의 해설을 귀담아들으며 한 시간쯤 전시실을 두루 돌아다녔다. 전시물 조명은 따로 있었지만, 안경을 끼지 않은 내게 전시실은 대체로 좀 어두웠다. ‘깬석기’나 ‘빗살무늬토기’ 따위의 우리말 이름이 좋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타제석.. 2019.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