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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한가위4

한가위 풍경, ‘귀성(歸省)과 ‘귀향’ 사이 추석 명절, 귀성 없는 귀향 기다릴 어버이 계시지 않는 고향 한가위가 가깝다. 예년과 달리 징검다리긴 하지만 거의 한 주를 쉴 수 있는 연휴라 그런지 은근히 들뜬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니, 들뜬 건 내 마음인지 모르지’ 하고 중얼대다가 다시 고친다. 내게 들뜰 이유가 있어야 말이지. 돌아갈 고향이 있나, 반겨줄 어버이가 계시나……. 아, 참. 선생님은 고아시니까 그렇죠?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날이 갈수록 명절이 오히려 쓸쓸해진다고 했더니 동료가 농을 건넸다. 그렇다. 어버이를 모두 잃었으니 나는 고풍스럽게 말하면 ‘고애자(孤哀子, 어버이를 모두 여읜 사람이 상중에 자기를 이르는 일인칭 대명사)’인 셈이다. 부모님뿐이 아니다. 내게 열아홉 살 연상의, ‘아버지 맞잡이’였던 맏형님도, 그 형수도 세.. 2023. 9. 28.
한가위, 슬픈 풍요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자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靑孀)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默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 얼마 되지 않아 달은 솟을 것이다. 낙엽이 날아내린 별당 연못에, 박이 드러누운 부드러운 초가지붕에, 하얀 가리마 같은 소나무 사이 오솔길에 달이 비칠 것이다. 지상의 삼라만상은 그 청청한 천상의 여인을 환상하고 추적하고 포옹하려 하나 온기를 잃은 석녀(石女), 달은 영원한 외로움이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 2022. 9. 12.
9월, 한가위 ‘달빛도 평등하게’ 9월엔 가을 절기, 백로(8일)와 추분(23일)이 들어 있다. 백로(白露)는 말 그대로 ‘흰 이슬’이다. 더위가 물러난다는 처서(處暑) 다음 절기인 백로엔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등, 가을 기운이 뚜렷해진다. 이 무렵은 고된 여름 농사를 얼추 마치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여서 근친(覲親)을 가기도 한다. 시집간 딸이 시부모로부터 말미를 얻어 친정에 가서 어버이를 뵙는 근친은 봉건시대엔 명절, 부모의 생신, 제일(祭日)에만 허락되는 일이었다. 친정 어버이를 만나 뵙고 안부를 여쭙는 일로 가슴을 끓였을 며느리들에게 근친은 얼마나 가슴 벅찬 여정이었을까. ‘근친 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는 속담에는 며느리들의 눈물과 한숨이 흥건할 듯하다. 친가보다 처가 쪽과 내왕이 더 많.. 2022. 8. 31.
차례상에 ‘홍동백서(紅東白西)’는 없다? 성균관에서 “차례상 규칙, 근거가 없다”고 발표 한가위를 앞두고 명절 차례와 관련된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오래되고, 감히 아무도 바꿀 수 없다고 여겼던 명절날 의례의 관습을 무화하는 듯한 꽤 무거운 소식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두 매체 외엔 모두 이를 뜨악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성균관, “차례상 규칙, 근거가 없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차례상 규칙 근거 없다.” “차례라는 말 자체가 기본적인 음식으로 간소하게 예를 표한다는 의미”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간소하게 차리고)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 올바른 예법이다.” 홍동백서? 4대 봉제사(奉祭祀)에다 한가위와 설날 차례까지 모두 10번쯤 제사를 모셨던 집안에서 자란 내게는 익숙한 성어(成語)다. 어릴 적부터 선친.. 2019.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