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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편지6

‘전교조 탈퇴’, 이제 ‘용기 내는 일’만 남았다? ‘교학연’이라는 요상한 단체에서 온 괴편지 전교조 결성 22주년 기념일이 다가오는데, 아닌 ‘괴편지’가 학교로 날아들었다. 글쎄, ‘괴편지’라니까 은근히 가십의 냄새마저 묻어나는데, 기실은 가십거리도 못 된다. 사람들 사이의 전통적인 소통 수단인 ‘편지’ 앞에다 하필이면 ‘괴(怪)’자를 붙이는 까닭은 ‘낯선 사람, 낯선 단체로부터 온 편지’인데다가 그 내용이 또한 ‘완전(!) 황당’ 그 자체기 때문이다. 오늘 배달된 ‘괴편지’ 아마 몇 해 전, 전교조 조합원 교사 명단 공개 때의 자료를 바탕으로 보낸 편지 같다. 편지를 받은 이는 이미 다른 학교로 이동한 교사를 포함,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이다. ‘스팸 이메일’은 들어봤는데 봉투에다 넣어서 보낸, 격식 갖춘 ‘스팸 편지’는 또 난생 처음이다. 편지의 제목.. 2022. 5. 24.
봄을 기다리며 학년말, 봄을 기다리며 내일로 방학 중 보충수업이 끝난다. 방학식 다음 날부터 24일간의 강행군이다. 하루에 다섯 시간. 오전 8시 10분에 시작되는 수업은 오후 1시 10분에 끝난다. 온순해 학교의 방침을 잘 따르는 아이들은 그래도 비교적 성실하게 학교에 나왔다. 양말을 껴 신게 한 추위 올겨울 추위는 정말 매웠다. 기온이 영상인 날이 며칠 되지 않았고 눈도 여러 번 내렸다. 최신식의 시스템 난방장치가 가동되었지만, 교실은 추웠다. 이미 5, 6년이 넘은 낡은 시설이어서 난방장치가 제 기능을 잃었는가. 따뜻한 바람이 나와야 하는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바람 앞에서 아이들은 어깨를 잔뜩 웅크리곤 했다. 추운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교무실도 썰렁하긴 매일반이다. 나는 그간 빼놓지 않고 내복을 입었고, 아침.. 2022. 1. 22.
만년필로 편지를 쓰다 제자에게 온 편지, 만년필로 답장을 쓰다 한 달 전쯤에 대학을 졸업한 제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2008년에 아이는 여고 2학년, 내 반이었고 내게서 문학을 배웠다. 스승의 날에 맞추느라고 그랬는지 익일 특급으로 보낸 편지는 길쭉한 진녹색 봉투에 들어 있었다. 나는 이름만 보고 그 애가 누군지를 단박에 알았다. 5월에 닿은 제자의 ‘편지’ 한 반에 몇 명씩 있는 흔한 이름이 아니었던 탓만은 아니다. 해마다 서른 명 내외의 아이들을 맡다 보면 기억이 하얗게 비어 있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어떤 특징적인 모습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서 앞뒤 기억이 뒤섞이면서 누가 선밴지 누가 후밴지 헷갈리곤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더러는 당돌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따뜻하고 다정한 표정으로, 더.. 2020. 6. 21.
‘엽서와 편지의 시대’는 가도 어느새 손 편지의 시대는 지나갔는가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哀)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 +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2019. 11. 27.
2월, 그리고 작별 2월, 그리고 작별의 시간…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눈발이 흩날렸다. 눈송이가 제법 푸짐하다 싶었지만 잠깐 내리다 그칠 거로 생각했는데 웬걸, 눈발은 그치지 않고 이내 사방을 하얗게 물들였다. 2010학년도의 마지막 날이다. 게다가 눈까지 오니 아이들도 좀 들떠 있는 듯했다. 간밤에 좀 일찍 자리에 들었더니 새벽 3시께에 잠에서 깨어 새로 잠들지 못했다. 건넌방에 가서 어제치 신문을 뒤적거렸다. 한 시간쯤 후에 다시 간신히 새 잠이 들었는데, 꿈자리가 어지러웠다. 아이들과 함께 어디 수학여행을 갔는가 보다.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3층쯤 되는 숙소가 폭삭 무너져 내렸다. 주변의 땅도 마구 꺼지기 시작하고……. 깨어나니 얼마나 황당한지. 게으른 담임을 잘도 따랐던 살가운 아이들 아침에 넥타이를 매려.. 2019. 4. 3.
노래여, 그 쓸쓸한 세월의 초상이여 유년 시절에 만난 대중가요, 그리고 세월 초등학교 6년을 유년기(幼年期)로 본다면, 나는 가끔 내 유년이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의 시기가 아니었나 하고 의심하곤 한다. 무슨 턱도 없는 망발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소리’를 ‘음성’이 아니라 일정한 가락을 갖춘 ‘음향’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매미 소리와 택택이 방앗간 소음의 유년 앞뒤도 헛갈리는 기억의 오래된 켜를 헤집고 들어가면 만나는 최초의 소리는 매미 소리다. 초등시절, 여름 한낮의 무료를 견딜 수 없어 나는 땡볕 속을 느릿느릿 걸어 집 근처의 학교 운동장을 찾곤 했다. 지금도 혼자서 외로이 교문을 들어서는 내 모습이 무성영화의 화면처럼 떠오른다. 거기, 오래된 단층 슬라브 교사, 운동장 곳곳에 자라고 있는 잡초들, 그리고 탱자나.. 2019.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