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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탄저병3

[2010 텃밭일기 ⑦] 나는 아직 ‘고추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배추벌레와 교감하는 시인, 그러나 지난 일기에서 고추에 벌레가 생겼다고 얘기했던가. 어저께 밭에 가 보았더니 고추에 병충해가 꽤 심각하다. 열매 표면에 구멍이 나면서 고추는 시들시들 곯다가 그예 고랑에 떨어진다. 열매가 허옇게 말라붙어 버린 것도 곳곳에 눈에 띈다. 장모님께 귀동냥한 아내는 그게 ‘탄저(炭疽)병’이라는데 글쎄, 이름이야 어떻든 번지는 걸 막아야 하는 게 급선무다. 아내가 처가를 다녀오면서 약이라도 좀 얻어 오겠다더니 빈손으로 왔다. 잊어버렸다고 하는데 정작 장모님께선 별로 속 시원한 말씀을 해 주지 않으신 모양이다. 딸네가 짓는 소꿉장난 같은 고추 농사가 서글프셨던 것일까. “어떡할래?” “번지지나 않게 벌레 먹거나 병든 놈을 따내고 말지 뭐, 어떡해…….” 두 이랑에 불과하지만, 선배의.. 2020. 7. 22.
[2017 텃밭 일기 ①] 기어코 농약을 치고 말았다 텃밭 농사와 농약, 그 ‘윤리적 딜레마’ 지난해 농사는 좀 늦었었다. 무엇보다 퇴직 이후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좌충우돌하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 새 5월이었다. 시기를 놓쳤는데 농사가 되기는 할까, 저어하면서 텃밭에 고추와 가지, 방울토마토 등을 심은 게 5월 하순이었다.[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 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미리 이랑을 지어 검은 비닐로 씌우는 이른바 ‘멀칭’ 과정을 생략하고 시작한 농사에 우리는 잔뜩 게으름을 피웠던 것 같다. 매주 한 번꼴로 밭을 둘러보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밭에 들르는 일이 뜸해졌던 것이다. 9월 중순께 다시 들렀을 때 텃밭은 바랭이와 쇠비름 같은 풀이 우거져 마치 흉가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임자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졌어도 우리 .. 2020. 5. 18.
초농기(初農記), 첫 농사의 기록 학교 한귀퉁이의 텃밭에 지은 첫 농사 올봄에 학교 가녘에 있는 밭의, 한 세 이랑쯤의 땅을 분양받았었습니다. 물론 이 분양은 소유권이 아닌 경작권에 대한 것입니다. 분양을 받고서 한동안은 엄두가 나지 않아 버려두었다가 가족들과 함께 일구고, 비닐을 깔고, 고추와 가지, 그리고 상추 등속을 심었지요. 이게 제대로 자라기나 할까,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 채. 그러나, 씨앗들은 주인의 의구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파릇파릇 움을 틔워 새잎으로 자라났습니다. 의심 많은 임자는 그제야 새잎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주는 기쁨에 조금은 우쭐대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출근할 때마다, 수업이 빌 때마다 거기 들러 그 녀석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시간이 주는 보람은 남달랐지요. 농촌에서 나고 자랐지만, 따로 농사짓기의 경험이 없.. 2019.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