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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탄저5

[2017 텃밭 일기 5] 따, 말아? 감나무 꼭대기의 호박 감나무 꼭대기까지 오른 호박 바람 온도가 심상찮다. 한여름이 고비를 넘겼다 싶었는데 어느덧 계절은 가을로 곧장 들어서 버린 것이다. 갈아엎은 묵은 텃밭에 쪽파를 심은 게 지난달 말이다. 그다음 주에는 쪽파 옆에다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를 뿌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건 정한 이치지만, 얼치기 농부는 제가 한 파종도 미덥지 못하다. 심긴 심었는데 쪽파가 싹이 트기나 할까, 배추 모종 심은 건 죽지 않고 뿌리를 내릴까 하고 지레 걱정이 늘어진 것이다. 어제 아침 텃밭에 들러 우리 내외는 새삼 감격했다. 쪽파는 쪽파대로 듬성듬성 싹을 내밀었고, 뿌리를 내릴까 저어했던 배추도 늠름하게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밭 귀퉁이 한구석에서 볕도 제대로.. 2021. 9. 16.
[2017 텃밭 일기 4] 탄저가 와도 ‘익을 것은 익는다’ 지난 일기에서 밝혔듯 장마 전에 찾아온 불청객, 탄저(炭疽)를 막아보겠다고 우리 내외는 꽤 가상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어 내키진 않았지만 나는 아내의 성화에 식초 희석액을 여러 차례 뿌렸다. 내가 좀 뜨악해하는 눈치를 보이자 아내가 직접 분무기를 메고 약을 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관련 글 : 진딧물 가고 탄저 오다] 아내가 일이 있어 두 번쯤은 나 혼자서 텃밭을 다녀왔다. 지지난 주에 시간 반쯤 걸려 익은 고추를 따는데 탄저로 흉하게 말라 죽고 있는 고추를 보면서 안타까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두 주쯤 먼저 가꾼 묵은 밭은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여서 다음번에 들를 때는 밭을 갈아엎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탄저는 ‘자낭균류에 의해 일어나는 식물의 병’()이다. ‘탄저.. 2021. 8. 29.
[2017 텃밭 일기 3] 진딧물 가고 탄저 오다 텃밭 고추에 탄저(炭疽)가 온 것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다. 눈 밝은 아내가 고추를 따다가 탄저가 온 고추를 따 보이며 혀를 찼을 때, 나는 진딧물에 이어 온 이 병충해가 시원찮은 얼치기 농부의 생산의욕을 반감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딧물로 고심하다가 결국 농약을 사 치고 나서도 나는 마음이 내내 개운치 않았다. 약을 쳤는데도 진딧물은 번지지만 않을 뿐 숙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 무렵 만난 선배 교사와 고추 농사 얘기를 하다가 들은 얘기가 마음에 밟히기도 했다. 집 마당에 텃밭을 가꾸는 이 선배는 부지런한데다가 농사의 문리를 아는 이다. 내가 어쩔까 망설이다가 내 먹을 건데 뭐, 하고 약을 쳐 버렸다고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개처럼 큰돈을 들여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도리가 없.. 2021. 7. 29.
2020 텃밭 농사 시종기(3) 고추 농사 ② 처음으로 고춧가루 20근을 거두다 좋은 모종으로 시작한 고추 농사 올해는 고추를 심되 비싼 모종, 상인 말로는 족보가 있는 모종으로 심었다는 건 이미 말한 바다. 글쎄, 긴가민가했는데 고추가 자라면서 이전에 우리가 10여 년 이상을 보아온 고추보단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고 우리 내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암만, 돈을 더 준 게 돈값을 하는구먼.” “그러게. 엄마가 지은 고추가 전부 이런 종류였던가 봐.” 그렇다. 일단 키가 좀 훌쩍하게 크는데, 키만 크는 게 아니라 검푸른 빛깔을 띠면서 뻗어나는 가지의 골격이 심상찮았다. 고추가 달리기 시작하고, 그게 쑥쑥 자라서 10cm 이상 가는 예사롭지 않은 ‘인물’을 선보이자, 우리 내외는 꽤 고무되었다는 얘기도 앞서도 했었다. 처음으로 익은 고추는 지난 회에서.. 2020. 9. 24.
2020 텃밭 농사 시종기(2) 고추 농사 ① 제대로 짓는(!) 고추 농사 새로 얻은 집 앞 텃밭을 두고 우리가 잠깐 혼란스러웠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러나 덥석 받아놓고 못 하겠다고 자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일단, 3월 초순께 농협에서 산 퇴비 2포를 시비(施肥)했다. 농사짓던 땅이라 할 만한 이력도 없는 메마른 땅이라 그거로 해갈이 될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4월 1일에 처가의 텃밭에 멀칭 작업을 하고 난 뒤,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가 18일에 집 앞 텃밭에도 비닐을 깔면서 이랑을 만들었다. 내외가 작업하고 있는데 이웃 농사꾼 둘이 다가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역시 공터에 땅을 부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도 농사 경험은 텃밭 가꾼 게 전부라고 했다. 멀칭을 마치고 그날, 김천 아포에 있는 육묘장에 가서 포기에 500원씩을 주고 고추 모종.. 2020.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