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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추억5

딸애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다 여행 떠난 아내 대신 딸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다 요즘 남편들은 아내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는 게 ‘기본’이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 ‘기본’도 못하고 살았다. 글쎄, 서툰 솜씨로 억지로 지어낸 음식이 제맛을 못 낼 게 뻔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새삼스레 시류를 좇아가는 것도 마뜩잖아서였다. 난생 처음 미역국을 끓이다 배워서라도 해 볼까 물으면 아내는 단박에, ‘됐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편하게 받아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선물을 하거나 얼마간의 돈을 넣은 봉투를 주는 걸로 그날을 넘겼고, 미역국은 딸애가 끓이곤 했다. 아내가 지난 월요일에 교회 일로 캄보디아로 떠나고 나서 일이 겹쳤다. 지역 농협에서 판매하는 김장용 배추를 사놓아야 했는데 그건 해마다 우리 내외가 새벽에 나가 함께 해 온.. 2020. 11. 22.
‘곤드레밥’이나 ‘콩나물밥’이나 어제 지어 먹은 곤드레밥 어제 아침에 곤드레밥을 지어 먹었다. 얼마 전부터 웬일인지 안동에 살 때 음식점에서 맛본 곤드레밥이 자꾸 생각났다. 마침 산나물이 한창 나는 철이다. 인터넷에서 ‘곤드레나물’로 검색해 보았더니 강원도 쪽에 산지가 여러 곳인 듯했다. 곤드레나물도 말린 것과 생나물을 삶아서 냉동한 것 등이 있었다. 담백한 강원도 나물, 곤드레 대체로 말린 것이 값이 더 나갔고 냉동한 게 싼 편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려다 개인 판매자인 단양 쪽의 농장에다 냉동 나물 4Kg을 주문했다. 4Kg이면 얼마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물었더니 밥을 지어 먹는 거라면 20인분쯤이라고 알려주었다. 전화로 주문하고 주소는 문자로 보내주고 바로 송금을 했다. 배송료는 물건을 받은 뒤 내가 내야 한단다. 잊어버리.. 2020. 7. 17.
밀밭 속에 남긴 황홀한 젊음 - 황순원의 ‘향수’ 황순원의 초기 시 ‘향수’ 시골에도 사랑은 있다. 하긴 사람이 사는 곳인데 사랑 없는 데가 어디 있으랴! 아니다, 시골에도 로맨스가 있다고 쓰는 게 더 정확하겠다. 사람이 있고 삶이 있으니 거기 로맨스가 있는 것 역시 ‘당근’이다. 그 전원에서 이루어졌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시골의 사랑, ‘밀밭의 사랑’ 뜬금없이 ‘전원의 사랑’ 운운하는 이유는 황순원의 시 ‘향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황순원의 단편소설 ‘물 한 모금’을 공부했다. 작가를 소개하면서 나는 그가 쓴 초기 시 몇 편을 들려주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중학교 때던가, 우리 집에는 자줏빛 하드커버의 이 있었다. 거기서 읽은 그의 시 두 편이 기억에 남아 있다. ‘빌딩’이라는 한 줄짜리 시와 ‘향수’가 그것이다. ‘.. 2019. 6. 17.
‘등겨장’, 한 시절의 삶과 추억 경북 지방의 향토 음식 ‘등겨장(시금장)’ 이야기 ‘등겨장’이라고 있다. 고운 보리쌀 겨로 만드는 경상북도 지역의 별미다. 두산백과사전에는 ‘시금장’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그러나 경상도에선 ‘딩기장’이라 하면 훨씬 쉽게 알아듣는다. ‘딩기’는 ‘등겨’의 고장 말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만 해도 우리는 봄이나 가을에 등겨장의 그윽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등겨장, 경북 지역의 별미 등겨도 종류가 여럿이다. 일찍이 부모님의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었던 전력이 있어 나는 등겨에 대해서 알 만큼 안다. 벼를 찧을 때 현미기를 거쳐 나온 등겨는 ‘왕겨’인데 이는 주로 땔감이나 거름으로 쓰인다. 껍질이 벗겨진 현미가 정미기를 여러 차례(이 횟수에 따라 ‘7분도, 8분도’라고 하는 ‘분도’가 정해진다) 돌아 나.. 2019. 3. 10.
목수 아버지의 추억 공구에 대한 집착 … ‘목수 아버지’의 피 요즘 나는 펜치나 드라이버, 망치와 톱 같은 공구들에 묘한 집착을 느낄 때가 많다. 얼마 전 사무실에 굴러다니던 녹슬어 뻑뻑해진 소형 펜치를 후배의 충고대로 식용유를 이용해 정성들여 녹을 닦아내 제대로 쓸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연모, 그리고 인간 보이지 않는 부위 깊숙이 녹이 슬어 거의 사용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물건이 몇 방울의 식용유를 먹고 붉은 녹물을 조금씩 토해내더니 곧 새것일 때의 기능을 되찾는 것을 보면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가끔씩 무료해지는 시간마다 연필꽂이에 꽂아둔 그 놈을 꺼내 만지작거리면서 연모를 처음 만들어 쓰던 때의 선사시대의 인간을 생각하곤 한다. 그보다는 더 오래 전 일로, 집에서 쓰던 망치의 자루가 부러져 .. 2018.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