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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채만식2

경상도 사람의 전라 나들이 ② 군산(群山) 겉핥기 생애 첫 전북 군산 기행 군산(群山)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선양동(善陽洞)’밖에 없다. 군 복무 시절에 같은 중대의 부사관 가운데 군산 사람이 있었다. 그는 늘 자기 고향이 ‘군산’, 그것도 ‘착할 선자, 볕 양자’ 선양동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호남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한 때라 나는 무심코 흘려듣고 말았지만 그 어감이 ‘선유(仙遊)’라고 할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산, 일제 쌀 수탈의 전초기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군산의 각종 정보를 살펴보면 군산은 단순히 하고많은 지방도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군산은 1899년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강제 개항된 이후 일제의 쌀 수탈 전초기지, 곧 미곡 반출항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 2018. 12. 19.
채만식, “조선 사람은 ‘닛본징(日本人)’이다. 닛본징이 되어야 한다” 걸출한 풍자작가 채만식(1902~1950)의 친일 부역 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 교사가 추적한 친일 문인의 민낯]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걸출한 풍자작가다. 흔히들 우리 판소리계 소설의 전통을 계승한 작가로 해학에 김유정, 풍자에 채만식을 꼽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단편 과 , , 중편 따위에 낭자한 풍자는 그것 자체로 일가를 이루고 있다. 걸출한 풍자작가, 채만식의 친일 행적 채만식 역시 만만찮은 친일 전력 때문에 등재를 피해가지 못했다. 작가로서 일가를 이룬 성취가 그를 친일 협력의 길로 밀고 갔을까. 그러나 ‘침략전쟁에 문학이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가’를 주장한 채만식의 ‘전쟁문학론’은 그.. 2018.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