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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졸업5

‘졸업’, 낭만에서 현실로 ‘낭만’이 아닌 ‘고단한 현실’과의 대면 대학 졸업 시즌이다. 전국에서 50만여 명의 대학 졸업생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다’. 그들 가운데 절반은 ‘백수’로 불리게 되는 미취업자라고 한다. 심각한 청년층 고용시장 상황 앞에 선 젊은이들의 표정은 어둡고 절박하다. 오죽하면 어떤 일간지는 ‘그들에게는 봄이 없다’라고까지 표현했을까. ‘취업난’과 ‘대출금 상환’으로 돌아온 졸업 입도선매(立稻先賣), 졸업하기도 전에 제각기 기업에 ‘팔려 가던’ 70년대 호시절에 비기면 오늘의 젊은이들은 불운하기 짝이 없다. 70년대 중반에는 사범대 졸업자들조차 기업으로 몰려가 시골 사학에서는 쓸 만한 교사를 모셔오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던가. 80년대 초반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도 그리 상황은 좋지 않았다. 4학년 .. 2022. 2. 27.
‘시니어’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당신들에게 2012학년도 방송통신고 졸업에 부침 지난 17일로 방송통신고등학교의 2012학년도가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3학년 3반의 서른한 명 늦깎이 학생인 당신들의 감격스러운 졸업과 함께 말입니다. 사흘 전에 치러진 본교 졸업식 때와는 달리 저는 오랜만에 정장을 갖추어 입었습니다. 반드시 졸업반 담임이어서는 아니라 무언가 정중하게 이 의식 앞에 서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이에겐 그렇고 그런 한 해에 그칠지 모르지만 당신들에게 지난 삼년의 의미는 매우 각별했을 터입니다. 그 삼년은 이 나라의 고교생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요. 그러나 당신들에게 지난 세 해는 단순히 햇수로만 따질 수 있는 날은 결코 아니었지요. 이 ‘졸업’의 의미 한 해라고 해도 등교해야 하는 날은, 하루 7시간의 수업이 기다.. 2021. 2. 22.
작별, 그렇게 아이들은 여물어간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 지난 12일은 졸업식이었다. 꽃다발과 사진기 조명 세례를 받으면서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열아홉 살 여고생의 신분을 벗고 예비 대학생, 방년 스무 살로 진입하는 아이들을 나는 마음속으로 축복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엷게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선입견 탓일까, 그 화장기는 마치 그들이 헤쳐나갈 미래처럼 불안해 보였다. 나는 지난해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을 찾아 일일이 손을 잡고 축하해 주었다. 자신이 꿈꾸어 온 대로 진학하게 된 아이는 몇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능을 치르고 나서 눈물을 쏟았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함박꽃 같은 웃음이 가득했으니. 작별의 때가 왔다 이튿날은 종업식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마음먹고 있었던 대로 정장을 하고.. 2019. 3. 30.
지난해의 네 잎 클로버 한 아이가 건네 준 네잎 클로버 2학기, 문학 시간도 막바지다. 희곡 단원에 들어가 교과서를 펴는데, 거기 누르스름한 종이쪽 같은 게 끼어 있다. 네 잎 클로버다. 아, 마치 잊었던 옛사랑을 떠올리는 것처럼 나는 아득해진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아니다. 훨씬 이른 때였으리라. 어떤 아이가 내게 전해준 것이다. 어디였나. 수업시간이었는지, 아니면 교무실에서였는지, 아니면 교정을 거닐 때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네 잎 클로버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받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누구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무심코 그걸 받아 교과서에다 끼웠을 것이다. 무심코. 그 아이는 어땠을까. 네 잎 클로버를 따서 들고 오다가 우연히 마주친 내게 내밀었던 걸까. 아니면 구태여 내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아이.. 2019. 3. 30.
가지치기, 혹은 거름과 물 주기 졸업식, 아이들을 보내며 학년 말이다. 한 해 농사를 다 지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농사는 사람 농산데, 요즘 이 농사꾼은 고단하다. 이 작물은 제멋대로 자라는 성질이 있어서 농사꾼은 제풀에 지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기르는 이 농사꾼 중에 으뜸은(말하자면 ‘꽃’은) ‘담임’이다. ‘생살여탈권’에 준하는 권한을 무제한 행사했던 옛날과는 다르지만,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내밀한 교감 같은 것도 가능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3년을 내리 쉬고 지난해 3월, 스스로 원해서 3학년 담임을 맡았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비담임으로 지내면 ‘몸의 평화’와 ‘정신의 이완’을 맞바꾸어야 한다. 조·종례에서 해방되고 반쯤은 ‘강시처럼’ 살아도 된다. 종이 울리면 무조건 반사로 교실.. 2019.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