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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젊음4

민들레, 민들레 요즘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자주 민들레를 만난다. 출근할 때는 꽃잎을 오므려 그리 눈에 띄지 않던 꽃이 퇴근할 무렵이면 거짓말처럼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마치 일부러 찾아가 뿌리를 내린 듯 민들레는 인도의 깨어진 블록 틈새에, 간선도로변 점포와 인도의 경계에, 주택가 골목의 담 아래에 옹색하게 피어 있다. 민들레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흔히 백성을 뜻하는 ‘민초(民草)’로 비유되는 꽃이다. 이 꽃은 겨울에 줄기는 죽지만 이듬해 다시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마치 밟혀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백성과 견주어지는 것이다. 어떤 선원 노동자의 아내가 썼다는 “민들레의 정신”이라는 글이 새삼스러운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까닭일 터이다. 지은이는 ‘소달구지와 경운기의 육중한 바퀴 밑.. 2020. 4. 10.
고별(告別)의 말씀 – 안동을 떠나면서 안동의 선배, 동료, 후배 동지들께 올립니다 미루어 오던 인사, 이제야 올립니다. 지난 1월 중순께 저는 안동을 떠나 구미로 이사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저는 여전히 안동여고 소속이어서 방학 중 보충수업은 물론, 개학 후 종업식까지 안동에 머물렀습니다. 다음 주쯤으로 예상되는 전보 인사가 발표되면 공식적으로 고별의 말씀을 여쭈기로 작정한 게 인사를 미루어 온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어제 학교에서 2011학년도 종업식을 끝으로 아이들, 동료들과 작별하면서 더는 미루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치러주신 송별의 모임에서 인사 말씀 올렸습니다만 다시 고별의 말씀을 드리는 것은 떠나면서 안동에서의 제 삶을 아퀴 짓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객지, 안동에서의 14년 안동은 제게.. 2019. 9. 1.
어떤 백일몽 중년 사내의 가슴의 뚫린 황량하고 어두운 통로… ‘젊은 여자’가 유난히 눈에 밟히는 날들이 계속되었겠다. 오해할 필요는 없다. 무슨 신이라도 내린 듯, 짬만 나면 디지털카메라 마니아들의 SLR(Single Lens Reflex) 포럼을 드나들었고, 거기 실린 아름다운 사진 속의 여인들을 원 없이 만났다는 얘기다. 세련된 아웃포커싱(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면서 피사체만을 선명하게 표현하여 피사체를 부각하는 촬영)으로 잡힌 고운 색감의 배경 속에서 여자들은 ‘존재’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들은 대학 교정에서, 하오의 공원에서, 저무는 들녘에서 무심한 눈길로 렌즈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방심한 시선 속에 담긴 것은 꼼짝없이 낡고 오래된 세월에 대한 도전과 멸시 같았다. 중년의 일상과 젊음의 낙관과 오만.. 2019. 4. 22.
세월, ‘청년’에서 ‘초로(初老)’로 20대 청년에서 60대 초로가 되는 세월 고교 때부터 절친했던 벗이 부친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나는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다. 스무 살 어름엔 날마다 어울렸던 친구였는데 30년도 전에 교단에 서면서 대구를 떠나 도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바람에 만남이 뜸해졌다. 그를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던가, 헤아려 보니 그가 모친을 여의었던 4년 전이었다. 퇴근시간대를 피해 4시쯤 출발하여 다섯 시쯤에 대구의료원 장례식장에 닿았다. 호실을 확인하지 않고 승강기부터 타고 3층에 올라 두리번거리는데, 검정 양복 차림의 상주 하나가 낯이 익었다. 동안의 온순했던 아이, 어느새 50줄이 된 벗의 동생이었다. 그는 날 알아보고는 무척 반가워했다. 조문에서 확인하는 ‘세월’ 이내 친구가 쫓아 나왔는데…, 4년 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2019.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