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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8

5월, 그 함성으로 5월, 민주주의의 함성을 기억하며 ‘계절의 여왕’이라는 진부한 수사로는 5월을, 그 아픔과 상처 위에 돋아난 새살을 다 말하지 못한다. 쇠귀 선생의 그림과 함께 일별해 보는 5월의 달력에는 아직도 선연한 피의 흔적, 매캐한 최루탄 내음, 그 푸른 하늘에 나부끼던 깃발과 드높던 함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벽두인 1일은 ‘메이데이(May Day)’다. 만국 공통의 이 ‘노동절’은 아, 대한민국에서만 ‘근로자의 날’이다. 이날의 역사도 만만찮다.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3월 10일(대한노총 창립일)로 생일이 바뀐데다 1963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근로자의 날’로 개칭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2022. 5. 1.
1989년 6월 12일, 그리고 20년 1989년 6월 12일-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북지부 결성 스무 살, 성년이 된 '전교조' 알다시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5월 28일 자로 창립 스무 돌을 맞았다. 20년이라면 갓난아이가 성년이 되는 시간이니 이 스무 해의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겠다. 20년의 절반, 그러니까 10년 만에 전교조는 합법화(1999.7.1.)되었으니 올해는 합법화 10돌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1989년이라면 좀 골치가 아픈 해였다. 그해 3월 25일에 문익환 목사의 전격 북한을 방문 이래 형성된 이른바 ‘공안정국’(요즘도 심심찮게 듣는 소리다.)의 한복판을 뚫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모토로 하는 참교육의 깃발을 올렸었다. 그날, 우리 지회(성주·칠곡)가 전세 낸 버스는 교사들을 가득 태운 채,.. 2021. 6. 12.
교장의 ‘자격’을 생각한다 교장의 자격, 자격증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 3월 전국의 초중고 가운데 최소한 두 개 학교는 ‘교장 없는 상태’로 새 학년도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공모 교장 임용 후보자 가운데 내부형을 통해 평교사가 교장으로 뽑힌 학교의 교장 임용제청을 거부한 까닭이다. 이 불운한 학교는 서울의 영림중학교와 강원도 춘천시의 호반초등학교다. 전국 공모 교장 임용후보자는 모두 377명. 이 가운데 99.47%는 이른바 ‘교장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고, 평교사는 고작 0.53%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평교사에 대한 임용제청을 교과부가 거부한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긴 하지만, 이들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의 교사라는 게 결정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교과부의 교장 임용제청 거부 그런데 정작 .. 2021. 2. 23.
24년 뒤에 출생신고서 회수… ‘꿈’이 선명해졌다 [나는 전교조다] ‘법외노조’ 되더라도 참교육 꿈은 변하지 않아 지난 10월 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법외 노조’ 통보를 강행했습니다.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의 권고도,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국내외 여론도 간단히 묵살되었지요. 이로써 1989년 ‘참교육’의 깃발을 내걸고 출범한 전교조는 1999년 합법화된 지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가 되었습니다. 전교조,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로 아시다시피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는 데 인용된 것은 ‘법’ 논리였지요. 노동부 장관은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단체에 더 이상 법에 의한 보호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교육부 장관은 “노동자이기에 앞서 선생님이기 때문에 교육을 위해서라도 현행법 준수를 촉구했다”라며 ‘교.. 2020. 11. 2.
참 스승 윤영규, ‘교육 민주화 선언’ 스물세 돌 윤영규 선생과 교육민주화 선언 오늘은 5월 10일, ‘교육 민주화 선언’ 스물세 돌을 맞는 날이다. 서울·부산·광주·춘천 등 4개 지역의 교사들이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1회 ‘교사의 날’ 집회에서 ‘교육 민주화 선언’을 발표한 1986년 5월 10일로부터 스물세 해가 지났다는 뜻이다. 교육민주화선언과 윤영규 선생 우리 집에 걸린 달력 중에 유일하게 전교조에서 낸 달력에만 이날이 기록되어 있다. 교회에서 발행한 달력엔 ‘어버이 주일’로, 인터넷 서점과 교과서·참고서를 펴내는 굴지의 출판회사에서 낸 탁상달력에도 오늘은 ‘기념’되고 있지 않다. 그게 2009년 현재,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관심의 표지이며 동시에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진행되어 온 교육운동의 현주소일지도 모르겠.. 2020. 5. 10.
잘 가게, 친구 친구 고 장성녕 선생을 기리며 장성녕이 죽었다. 지난 10일 아침에 나는 그의 부인으로부터 그 비보를 전해 들었다. 재수술했는데…, 결국 하늘나라로 갔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뜻밖에 담담했다. 느닷없는 소식에 나는 반쯤 얼이 빠졌고 전화기를 놓고서 잠깐 허둥댔다. 죽음에 대한 전언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 그것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그만큼의 사실적 무게로 사람들의 일상을 헝클어놓는다. 나는 그의 부음을 알리기 위해 몇 군데 전화를 건 다음, 이 죽음의 ‘비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가 숨진 병원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었다. 아, 그분요, 12일 출상입니다. 직원의 대답은 건조하고 ‘현실적’이었다. 그에게 이른바 ‘풍’이 온 건 몇 해 전이다. 입원 치료 후에 그는 반년간 휴직을 했고, 완전하지는 .. 2019. 3. 2.
31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 학교를 떠나며 ① 오는 2월 마지막 날짜로 저는 지난 31년의 교단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어떤 형식의 끝이든 감회가 없을 수 없지요. 지난해 세밑에 쓴 기사(서른넷 풋내기였던 나, 학교에서 잘리다)에 저는 떠나기 전에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학교에 머물 날이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저는 여전히 궁싯거리고만 있습니다. 정리하고 마무리하자고 자신에게 되뇌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지요.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마무리해야 하는지가 다만 어지러울 뿐입니다. 31년(1984.3.1.~2016.2.28.)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셈법입니다. 1989년 9월부터 1994년 2월까지의 공백, 4년 반은 기실 우리에겐 ‘잃어버린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2019. 2. 25.
나의 전교조 25년, 그 옹이와 매듭 25년 만에 사학 재단의 사과를 받다 지난 15일, 스승의 날 저녁에 나는 친구인 장(張) 선생과 함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갔다. 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우릴 초대했던 것이다. 우리는 물론 그를 모른다. 친구는 그래도 한때 거기 신자였지만 나는 가톨릭과는 아무 인연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거기 간 것은 오래전의 어떤 ‘인연’ 때문이었다. 25년 전 - 아, 그새 그렇게 세월이 흘러 버렸다. 1989년 8월 23일에 나는 친구와 함께 그 수도원 산하의 학교 법인에서 해임되었다. 그해 5월 28일, 온 세상을 달구며 돛을 올린 ‘교원노조’ 때문이었다. 전국에서 교원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초중등, 공사립 교사들은 무려 1천6백여 명이었다. 1989년 우리를 해임한 재단의 초대를 .. 2019.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