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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장인상2

‘처부모’와 ‘친부모’가 다르지 않다? 딸 가진 부모는 모두 ‘처부모’가 된다 얼마 전 동료 여교사가 모친상을 입었다. 그이의 남편은 내 복직 동료다. 나는 학교 친목회에서 보내온 그이의 모친상 소식보다 복직자 모임에서 전한 그 남편의 ‘장모상’ 연락을 먼저 받았다.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문상했는데 한꺼번에 나는 두 사람의 복상(服喪)을 위로할 수 있었다. 학교마다 친목회가 구성되어 있고 이 친목회는 상조회 구실이 그중 요긴하다. 당연히 회칙에는 경조사에 관한 규정이 중심이다. 본인의 결혼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모상 규정이 으뜸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친부모·처부모를 가리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여교사에게 친부모 아닌 시부모가 중요하다면 남교사에게 처부모의 무게도 같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부친상’과 ‘장인상’의 거리 글쎄, 서.. 2020. 2. 22.
흙, 혹은 나무로 돌아가기 장인어른 1주기에 어제는 장인어른의 1주기였다. 고인과 동기간인 처숙(妻叔)과 고모 두 분이 각각 부산과 대구에서 달려왔다. 어차피 각별한 슬픔 따위를 느끼기에는 모인 사람들이 산 세월이 만만찮았다. 처삼촌과 큰 처고모는 일흔이 넘었고, 작은 처고모도 올해 회갑이다. 간단한 추도회를 마치고 다리가 불편한 장모님을 뺀 일가가 마을 뒤의 선산에 올랐다. 올해 중학 2학년이 될 하나뿐인 친손자가 씩씩하게 앞장을 섰다. 고인에게는 무덤이 없다. 고인보다 몇 해 전 세상을 뜨신 어머님의 산소, 그 발치 아래 선, 키 큰 소나무 아래 당신의 뼛가루가 뿌려졌다. 한 해 동안 이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지나간 눈과 비바람 가운데서 그것은 녹아 기쁘게 흙 속에 스며들었으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장.. 2019.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