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자살3

[오늘] 1933년 오늘-히틀러 총리 등장, 홀로코스트의 서막과 <나의 투쟁> 재출간 [역사 공부 ‘오늘’] 1933년 1월 30일, 나치당 아돌프 히틀러 바이마르 공화국 총리로 1933년 1월 30일,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1929년의 경제 대공황 이후 큰 타격을 입은 경제와 민주 정당들이 속수무책인 가운데 나치당이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떠오르는 등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나치는 1926년 총선에서 선전, 괴벨스와 괴링 등 12명을, 1932년 총선에서는 전체 득표의 1/3을 차지하여 230명을 국회에 진출시켜 제1당이 되었다. 당시의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히틀러는 동유럽을 정복하고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을 동방으로 확장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공산주의를 혐오하.. 2024. 1. 30.
한 청년의 죽음에 부쳐 그 죽음에 우리 사회가 답하여야 한다 오늘 자 사회면의 한 기사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제목은 “죽음으로 내려놓은 ‘등록금·취업 짐’”이다. 무슨 기사인지는 안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등록금 문제와 취업 문제로 고민하던 한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하다는 내용이다. 1998년 고려대 정경대에 입학했던 청년은 가난(등록금) 때문에 휴학과 복학, 자퇴를 거듭했다. 2000년 자퇴, 다른 사립대 입학, 자퇴, 고려대 재입학, 휴학과 입대……. 그러다가 그는 결국 2006년 학교를 그만두었다. 전역 후에도 학비 마련이 여의치 않았던 까닭이다. 지난해 8월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고시원에 머물던 그는 고시원 월세를 체납한 상태에서 1월 중순께 소식이 끊어졌다. 그리고 그는 가출 신고 40일 만인 지난 9일.. 2020. 3. 11.
2009년, 노무현 이야기 둘 노무현, 남은 자들의 성찰과 참회 어느새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다. 2009년 그의 죽음은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르쳤고, 그를 지지한 국민에겐 정치적 지지의 시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노무현은 적어도 지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 길이어서, 스스로 가야 할 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길을 간 지도자다. 그를 따르려던 정치인들은 그 길이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8년 뒤에 그의 비서실장이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고 정치적 동.. 2019.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