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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봉창2

[순국] 조명하(1928)와 이봉창(1932) 의사, 형장에서 지다 조명하 의사(1928.10.10.)와 이봉창 의사(1932.10.10.)는 순국 조명하 의거(1928년 5월 14일) 1928년과 1932년 오늘, 조명하(趙明河) 의사와 이봉창(李奉昌1900~1932) 의사가 각각 타이베이 형무소와 도쿄 이치가와(市川)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조명하는 히로히토의 장인인 일본제국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王)를 독검으로 찔렀고 이봉창은 도쿄의 경시청 사쿠라다몬(櫻田門) 앞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폭탄으로 저격한 이다. 조명하에게 찔린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는 상처에서 패혈증이 생겨 이듬해 1월 죽었고, 이봉창이 던진 수류탄에 말과 마차가 손상되고 일본 고관대작 두 명이 다쳤으나 히로히토는 화를 면했다. 거사의 성패는 갈렸지만, 일제는 두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 2023. 10. 10.
두 아들에게 남긴 윤봉길의 편지…북받침을 어찌하랴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②] 백범의 한인애국단과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 상하이의 임시정부 청사 다음 여정은 훙커우(虹口)로 더 잘 알려진 루쉰(鲁迅) 공원이었다. 1927년 상하이로 온 루쉰은 생전에 이 공원을 즐겨 산책하였는데 1956년 그의 유해가 이곳으로 이장되면서 기념관이 만들어졌고 1989년에는 공원 이름도 아예 루쉰으로 바뀐 것이다. 일찍이 영국 원예가가 설계한 서양식 정원 양식의 이 공원을 일약 세계에 알린 이는 스물다섯 살의 조선 청년 윤봉길(尹奉吉, 1906~1932)이다. 그가 일본군의 전승 기념식장에 던진 폭탄이 만주사변 이래 파죽지세로 중국 중심부로 진격하고 있던 일제의 기를 꺾어 놓았던 것이었다. 윤봉길, 진격하는 일제에 폭탄을 던지다 윤봉길은 만보산(萬寶山) 사건과 만주사.. 2019.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