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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병희2

[순국] 이육사, 베이징의 지하 감옥에서 지다 육사,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총영사관 지하감옥에서 순국 1944년 오늘 새벽 5시, 베이징(北京)의 일본총영사관 지하 감옥에서 한 조선 청년이 눈을 감았다. 그는 ‘겨울’을 봄을 예비하고 있는 ‘강철로 된 무지개’로 여겼던 사람, ‘청포도’와 ‘광야’를 노래했던 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였다. 향년 40세. 1943년 4월에 베이징으로 온 육사는 충칭(重慶)과 옌안(延安)을 오가면서 국내에 무기를 반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7월에 모친과 맏형의 소상(小祥)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늦가을에 일경에 체포된 뒤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새해를 맞은 지 16일 만에 육사는 마침내 쉼 없는 투쟁의 삶을 마감한 것이었다. 육사, 일본총영사관 지하감옥에서 지다 육사의 시신을 수습한 이는 항일.. 2024. 1. 16.
77년 만의 귀환 - 석주(石洲) 이상룡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이 국적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분들이니 이들의 국적 회복은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상은 단재 신채호(1880~1936),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 선생 등 독립운동가 예순두 분. 임시정부 수립(1919) 90년 만이다. 이번에 가족관계등록부가 창설되는 독립지사는 이상룡, 이봉희, 김대락 선생 등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는데, 이봉희1868~1937)는 선생의 아우이고, 백하(白下) 김대락(1845∼1915)은 선생의 처남이다. 석주가 류인식·김동삼 등과 함께 안동에 협동학교(1907)를 세웠을 때, 백하는 문중 원로들과는 달리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경.. 2019.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