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문열7

이문열의 ‘촛불 알레르기’, 다시 도지다 작가 이문열의 ‘촛불 알레르기’ 촛불만 켜지면 두드러기가 나는 작가 이문열(69)의 알레르기 증상은 여전한 모양이다. 이 씨가 지난 2일 에 기고한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이라는 칼럼이 새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진 이문열의 ‘촛불’ 알레르기 그동안 여러 차례 그의 알레르기 현상을 다룬 글을 써온지라 이번에는 구경만 하고 말렸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은근히 속이 거북해진다. 이번 그의 칼럼은 그가 기대어 온 ‘보수’가 기실은 ‘수구’의 참칭임을 새삼 확인해 준 듯하다. 이문열이 ‘촛불집회’를 ‘위대한 포퓰리즘’, ‘불장난’이라 폄하하고 ‘의병’ 운운하던 2008년 6월에 나는 그에 관한 첫 번째 글을 썼다.[관련 글 : 이문열, 찢을까 살라버릴까] 이듬해(200.. 2020. 12. 1.
이문열의 ‘황당과 우울’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는 왜 ‘황당’하고 ‘우울’해야 했던가 어째 기척이 없나 했다. 오늘 그예 그는 입을 열었다. 물론 보수신문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다. ‘시국 관련 오랜만에 말 꺼’낸 작가 이문열 이야기다. 어째 조용하다고 했는데 기어코 그를 이 먼지 세상에 끄집어내는 것은 그가 역시 이 나라 ‘보수 우익’의 수호천사인 탓인가. 보도에 따르면 ‘강기갑 국회 폭력 무죄’, ‘PD수첩 명예훼손 무죄’ 등 ‘일련의 재판 결과’에 대해 그는 ‘우울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말을 아끼면서 황당하고 울적하다는 말을 거듭했다”라고 한다. 그는 ‘우울한 이유’로 “예전에 내가 다분히 엄살 섞인 한탄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엄살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이건 무.. 2020. 11. 30.
이문열, 그도 그 ‘험한 꼴’의 일부가 아닌가? 이문열은 ‘보수우익’의 ‘백기사’? 가 작가 이문열의 인터뷰 기사(2010.9.5)를 실었다. 글쎄, 이 굳이 이문열을 만난 것은 인터뷰 서두에 나온 대로 ‘인사청문회-유명환 딸 특채 파동’ 등으로 어지러운 상황에서 이 ‘보수우익 작가’로부터 ‘쾌도난마’식 해법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문열은 요즘 같은 ‘보수가 몰리는’ 시기에 등장하는 우익의 ‘백기사’ 노릇을 계속해 왔으니 말이다. 그는 현시기에 대해서 “정말 험한 꼴을 못 봐서 그렇다”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물론 이 비판이 겨냥하는 곳은 보수 진영이다. “좌파에 정권뿐만 아니라 국회 권력까지 다 넘겨줘 봐야 정신 차릴까? 한심하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정신 차릴 주체’를 따로 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 보수는 너무 많은 짐을 실은 배와 .. 2020. 9. 18.
‘이문열’, 찢을까 살라버릴까 극우 냉전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어정쩡한 우파 이데올로그 이문열 작가 이문열이 화제다. 평역한 를 완간한 뒤 ‘촛불집회’를 ‘위대한 포퓰리즘’이라고 말할 때부터 이 양반이 잘하면 ‘한건’ 하겠다는 조짐은 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불과 한 일주일 만에 시민들의 촛불을 ‘불장난’으로 헐뜯었고, 뜬금없이 ‘의병’을 거론하면서부터 온갖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그의 부친은 해방 공간에서 좌익 활동에 참여한 이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부친은 ‘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와 어린 남매, 뱃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막내를 버리고 사회주의를 좇아 월북’했다. 냉전 이데올로기와 ‘레드 콤플렉스’가 개인과 일가의 삶을 갈가리 찢어 놓아 버린 세월이 우리 현대사였을진대, ‘빨갱이 자식’으로 세상살이를 배웠던 작가의.. 2020. 6. 25.
이문열, 다시 ‘홍위병’을 불러내다 작가 이문열의 지겨운 ‘홍위병론’, 철 지난 현실 인식 작가 이문열이 다시 ‘한 건’한 모양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오늘 오전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에 출연해 또 그 특유의 신념과 현실 인식을 피력한 것이다. ‘홍위병’과 ‘의병’에 이은 제3탄인 셈이다. 그의 현실이나 역사 인식의 범주라는 게 늘 거기서 거긴 것처럼 이번 발언도 ‘홍위병’론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번 발언의 요지는 옛 ‘홍위병들이 권력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 각 분야에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는 국회에서 MB악법 저지를 외치며 농성하고 있는 야당이나, ‘권력의 방송 장악’을 저지하기 위해 파업에 나선 언론노동자들의 싸움은 모두 한통속에 불과하다. 민경욱 네. 참 어려운 질문을 제가 좀 드리겠습니다. .. 2020. 1. 24.
허물어진 절터에 마주 선 돌탑과 서당 ‘나머지 탑’을 찾아서 ① 봉림사지 삼층석탑 [관련 글] 탑의 마을, 안동 임하리(臨河里) 안동지역의 탑을 다룬 기사 ‘저 혼자 서 있는 탑들’을 쓴 건 지난 1월 초이다. 내친김에 주변의 예천, 영양, 의성 지역의 탑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안동에는 여전히 미처 얘기하지 못한 탑이 제법 많다.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는 탑을 찬찬히 다 돌아보자고 작정했지만, 지금껏 고작 몇 기의 탑을 더 찾아보는 데 그치고 있다. ‘나머지 탑’이라는, 좀 거시기한 이름을 붙인 까닭은 이 탑들이 그 중요도나 가치가 다른 탑들에 미치지 못해 시도 지정문화재거나 문화재 자료여서다. 문화재를 위계와 등급으로 매기는 것은 매정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지 않을 수는 없을 듯하다. 문화재 중 으뜸은 국가 지정문.. 2019. 10. 2.
바람 앞 농촌, ‘이 중에 즐거운 뜻’은 이미 거기 없다 [안동 시가 기행 ⑥]존재 이휘일의 일찍이, 한문으로도 완벽한 문자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조선조 사대부들은 한문뿐 아니라, ‘언문’이라 천대받던 한글로도 삶과 세상을 노래했다. 우리가 오늘날 국문 시가를 즐기며 당대 현실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 덕분이다. 이들 사대부는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였고, 시조는 그들의 ‘정신적 자세를 표현하는 그릇’이었다. 퇴계나 율곡 같은 이들이 과 를 통해서 노래한 것은 그들의 성리학적 세계관, ‘자연에 투영된 인생관의 한 극치’였다. 이들 사대부가 관념적인 유교 이념을 형상화하거나 안빈낙도에 침잠하고 있을 때, 피지배계층인 농민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이들은 여전히 문학의 향유층이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노래할 여유도 능력도 .. 2019.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