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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광수5

[오늘] 국민총력전을 위한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 결성 [역사 공부 ‘오늘’] 1941년 10월 22일,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 결성 1941년 오늘(10월 22일), 경성부민관 대강당에서 국민 총력전을 위한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이 결성되었다. 대회는 일본인 요인과 윤치호, 최린 등 준비위원과 각도 발기인 대표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조선임전보국단(아래 보국단)은 같은 해 8월에 결성된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와 임전대책협의회가 ‘나라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자’라고 하는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통합한 것이었다. 보국단의 강령은 황도(皇道) 정신 선양과 사상 통일, 전시체제에서 국민 생활 쇄신 등 다섯 가지였는데 ‘김동환(일제에 엎드려 ‘웃은 죄’)과 이광수(피와 살과 뼈까지 일본인이 되려 했건만)의 대역작’이라는.. 2023. 10. 22.
[오늘] 일생을 가난과 싸웠던 소설가 최서해, 서른둘에 스러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32년 7월 9일, 소설가 최서해 떠나다 1932년 7월 9일, ‘탈출기’와 ‘홍염(紅焰)’의 작가 최서해(崔曙海, 1901~1932)가 위문 협착증 수술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가난과 싸웠고, 그 빈궁(貧窮)을 문학으로 형상화해 왔던 서해는 끝내 그 가난을 벗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향년 32세. 최서해의 본명은 학송(鶴松), 서해(曙海)는 설봉(雪峰) 또는 풍년(豊年) 등과 같이 쓴 아호다. 그러나 그는 소월처럼 본명보다 이름으로 주로 불린다. 함경북도 성진에서 소작농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1910년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과 소년 시절을 보내었다. 서해는 유년 시절에 한문을 배우고 성진보통학교에 3년 정도 다닌 .. 2023. 7. 9.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책이 나왔습니다] 책이 나왔다. 원고를 넘긴 게 지난해 11월 중순이니 432쪽짜리 단행본 1권이 나오는 데 꼬박 다섯 달이 걸렸다. 물론 난생처음 펴낸 책이다.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를 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끼적인 지 10년이 넘어서다. 책이 나왔다는 걸 실감한 건,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이 가능해지면서다. 젊은 시절 한때, 문학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교직에 들어 서른을 넘기면서 '문학'에 관심을 끊은 이후 나는 한번도 글쓰기를 고민하거나 쓰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살았다. 스무 해쯤 지나, 오래 몸담은 교원단체 활동에서 놓여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꾸리게 되면서 나는 한두 편씩 끄적인 글로 '블로그'에 입문했다. 블로그에서 글쓰기 시작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모두 1700편이 넘는 글을 쓰.. 2019. 5. 8.
[오늘] 3·1운동의 ‘마중물’, 2·8독립선언도 100돌을 맞는다 [역사 공부 ‘오늘’] 1919년 2월 8일, 동경유학생들 ‘조선 청년 독립선언’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의 해지만, 100돌을 맞이하는 게 3·1운동만은 아니다. 기미독립선언 한 달 전에 동경에서 선포된 2·8독립선언과, 한 달쯤 뒤인 4월 11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이루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도 역시 100주년을 맞는다. 3·1운동은 2·8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아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했고, 이는 다시 망명지 상하이에서의 임정 수립으로 이어졌다. 동경유학생들,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독립선언' 동경유학생인 와세다(早稻田)대학의 최팔용(崔八鏞) 등이 조직한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은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였다. 이날 열린 조.. 2019. 2. 8.
‘친일문학’ 이야기 - 글머리에 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문학’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갈증 중등학교에서 서른 해 가까이 문학을 가르쳐 왔지만 정작 ‘친일 문학’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늘 판박이 식의 지식 전수에 급급하다 보니 그랬지만 기실 스스로 친일 문학에 대한 이해가 얕았던 게 가장 큰 이유다. 결국 친일 문학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진 서정주의 정도로 얼버무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경우는 그나마 창씨개명에 앞장섰고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등 따위로 알려진 게 있어서 대충 주워섬기면 되었지만 막상 누가 친일문인이고 누가 아닌지를 꼽다 보면 이내 이야기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시간마다.. 2018.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