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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윤봉길4

[순국]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 형장에서 지다 1932년 12월 19일, 총살형으로 순국 1932년 오늘(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일본 혼슈(本州)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 육군 공병 작업장의 서북쪽 골짜기에서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가 순국하였다. 무릎을 꿇려 작은 십자가에 묶이고 눈을 가린 윤 의사의 10m 앞에서 일본군 병사가 쏜 총탄은 의사의 이마를 꿰뚫었다.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 총살형으로 순국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열린 일본군의 전승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지고 현장에서 체포된 지 234일 만이었다. [관련 기사 : 두 아들에게 남긴 윤봉길의 편지…북받침을 어찌하랴] 이태 전인 1930년에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 2023. 12. 19.
하얼빈 의거 110주년, ‘안중근 글꼴’ 나왔다 GS칼텍스 ‘독립 서체 캠페인’, 지금까지 총 5종 글꼴 공개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올 3월부터 '독립 서체 캠페인'을 진행해 온 지에스(GS)칼텍스(아래 지에스)에서는 지난 8월 15일 '안중근 의사'의 서체를 추가 배포한 바 있었다. ‘독립 서체’ 캠페인은 파편적인 기록만 남은 일부 독립운동가분들의 글씨체를 모아서 전문 폰트 개발업체와 협업, 당시의 글씨체를 현대에 맞게 복원·제작하는 것이다. 지에스는 이를 무료 배포해 그 의미를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안중근체는 안 의사가 의거 거행 전 동지인 우덕순에게 준 한시와 한글 시 에 남아 있는 그의 육필을 기초로 제작한 글꼴이다. 안 의사는 적지 않은 한문 유묵을 남겼으나 한글로 쓴.. 2019. 10. 28.
두 아들에게 남긴 윤봉길의 편지…북받침을 어찌하랴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②] 백범의 한인애국단과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 상하이의 임시정부 청사 다음 여정은 훙커우(虹口)로 더 잘 알려진 루쉰(鲁迅) 공원이었다. 1927년 상하이로 온 루쉰은 생전에 이 공원을 즐겨 산책하였는데 1956년 그의 유해가 이곳으로 이장되면서 기념관이 만들어졌고 1989년에는 공원 이름도 아예 루쉰으로 바뀐 것이다. 일찍이 영국 원예가가 설계한 서양식 정원 양식의 이 공원을 일약 세계에 알린 이는 스물다섯 살의 조선 청년 윤봉길(尹奉吉, 1906~1932)이다. 그가 일본군의 전승 기념식장에 던진 폭탄이 만주사변 이래 파죽지세로 중국 중심부로 진격하고 있던 일제의 기를 꺾어 놓았던 것이었다. 윤봉길, 진격하는 일제에 폭탄을 던지다 윤봉길은 만보산(萬寶山) 사건과 만주사.. 2019. 3. 3.
후미진 중국 골목에 한국인이 줄을 서는 이유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①] 상하이, 1919년에서 1932년까지 광복 70년, 서른여덟 명의 ‘청년 백범 4기’ 답사단은 지난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아래 임정)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에 올랐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수립된 임정의 중국 내 이동 경로는 항저우(杭州), 전장(鎭江), 창사(長沙), 광저우(廣州), 류저우(柳州), 치장(綦江)을 거쳐 충칭(重慶)까지다. 그러나 우리의 여정은 우선 창사로 옮기기 직전의 난징(南京)까지다. 지난 세기, 백범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이 배를 타고, 혹은 기차를 타거나 걸어서 옮겨 다닌 수백, 수천, 수만 리의 길을 21세기의 후손들은 비행기로 날아 전세 버스를 타고 따른다. 그들이 일제에 쫓기며 꾸려야 했던 풍찬노숙 16년(191.. 2019.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