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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우울한 귀향2

이순(耳順) 넘어 ‘서재’를 꾸미다 퇴직하고서야 조그만 ‘서재’를 마련하다 지난 일기에서 밝혔듯이 나는 장서가도 아니고 그런 깜냥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내로라하는 장서가들이 거액을 들이거나 헌책방을 이 잡듯 뒤진 끝에 책 ‘한 권’을 얻었다는 전설적인 무용담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2만 원이 넘는 책은 엔간하면 사는 대신에 도서관에서 빌려 보며 갈증을 달래는 편인 것이다. 그러나 40년 이상을 책을 탐하며 살아온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모은 책이 크고 작은 서가 대여섯 개를 채웠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나만의 방, 말하자면 ‘서재(書齋)’라고 이름 붙일 만한 공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북봉산 아래 서재를 꾸미다 남매를 둔 집이라면 대개 비슷하지 않나 싶다. 아이들은 어릴 땐 한 방에 재우기도 하지만 자라면 따로 방 하나.. 2019. 3. 11.
문학 교사의 책 읽기 10년 넘게 써 온 글이 천 편이 넘었지만, 그 가운데 몇 편이나 '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다시 부끄러움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 있긴 하다. 글을 쓴 때와 내용 분류와 관계없이 무난히 읽히는 글을 한 편씩 다시 싣는다. 때로 그것은 허망한 시간과 저열한 인식의 수준을 거칠게 드러내지만, 삶의 편린들 속에서도 오롯이 빛나는 내 성찰의 기록이다. 나날이 닳아지고 있는 마음의 결 가운데 행여 거기서 예민하게 눈뜨고 있는 옛 자아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누구에게나 그렇듯 성장기의 어느 순간인가에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던 왕성한 책읽기의 벅찬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진부한 일상을 일거에 허물면서 무엇이든 가능.. 2018.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