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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여학교6

삼월을 맞으며 20년 만에 여학교로 돌아와서 3월이다. 내 탁상 달력에는 ‘온봄달’이라 이름 붙이고 있는데, 그 ‘온’의 의미가 잘 짚이지 않는다. 아마 ‘온전하다’는 의미인 듯한데, 따로 사전을 찾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짐작하고 만다. 1일은 3·1절. 오늘 저녁에는 시(市)에서 ‘횃불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연다고 한다. 행사 사진을 몇 장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찌감치 행사장 인근의 건물을 물색해 사진 찍을 장소를 봐 둬야 하는데, 썩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삼각대를 설치해 야경을 찍은 경험이 없어서다. 안동은 최초의 항일 독립운동인 ‘갑오의병(1894)’이 봉기한 곳으로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한 지사를 열 분(전국 60여 분)이나 낳았고, 단일 시군으로는 시도 단위.. 2022. 2. 28.
[축제 풍경] 에너지와 끼, 혹은 가능성과 희망 온갖 끼를 다 보여준 아이들의 축제 오뉴월 염천에 학생 축제라면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난 16일, 축제는 치러졌다. 지난해 얘기했던 것처럼 ‘이 무한 입시경쟁 시대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선택한 ’비켜 가기‘ 축제(축제를 치렀다는 생색은 내면서 시간과 영향은 줄이겠다는)였던 게다. 이웃한 남학교의 축제는 10월에 치러진다. 대신 단지 사흘의 준비 기간밖에 없는데 비기면 거의 열흘에 가까운 준비 기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훨씬 내실 있다는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7월 초순 기말시험을 끝내고부터 아이들은 축제 준비로 골몰해 온 것이다. 축제의 패턴은 예년과 다르지 않다. 합창제와 예술제, 동아리별로 각 교실에서 치러진 이벤트 등은 비슷했으나 시절 .. 2021. 7. 23.
큰아기들의 5월, 여고 체육대회 풍경 여학교의 체육대회 풍경 어제 학교에선 체육대회가 베풀어졌다. 자투리 시간조차 쉽게 낼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여러 가지 준비를 해서 한나절 동안의 망중한을 즐겼다. 체육대회라곤 하지만, 정작 정식 체육 종목은 이어달리기 정도이고 나머지는 줄다리기, 피구, 발야구, 6인 7각 등 놀이 형식이다. 지난해 전입해서 맞은 첫 체육대회 때에 나는 으레 운동장에서 치러지는 행사일 거로 생각하여 야전 복장으로 출근했다. 그러나 학교에 와서야 그게 내 ‘무감각의 소치’라는 걸 깨달았다. 수업 시간에도 부지런히 거울을 보아야 하는 큰아기들에게 ‘오월 땡볕’은 ‘공공의 적’이다. 당연히 모든 종목이 체육관의 ‘안전한 그늘’에서 치러진 것이다. 그러나 올 체육대회에선 줄다리기와 이어달리기 종목은 운동장을 이용했.. 2021. 5. 10.
그들만의 커뮤니티, 광고 두 개 아이들만의 공통체 아이들은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아침 8시에 등교하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하교하니 아이들은 무려 14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학교는 아이들이 일상이 보장되는 온갖 형식을 갖추고 있다. 유리창에 매달린 칫솔, 교실 콘센트마다 꽂힌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PMP, 전자사전 등의 충전기, 정오를 전후하여 행정실 옆 공간에 쌓이는 택배상품들(아이들은 책이나 생활필수품 등을 택배로 학교에서 받는다.)은 말하자면 이 입시경쟁 시대가 낳은 새로운 학교 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양이 한참 떨어지는 낡은 교실의 수업용 컴퓨터로 메일을 받거나 숙제를 하고, 도서와 상품을 주문하는 일을 빼면 아이들은 인터넷과 한참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는.. 2020. 5. 31.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2) 복직 이후의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해직 5년은 내 삶에서 일종의 변곡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른바 ‘아스팔트’ 위의 교사로 쪼들리며 산 세월이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시절이었다. 복직도 승리의 전망도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젊음 때문이었다. 5년 만의 복직, 다시 만난 아이들 1994년 3월에 나는 경북 북부지역의 한 시골 중학교에 복직했다. 막상 학교로 돌아왔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료가 ‘중증’이라고 표현할 만큼 내 의식과 현실은 어긋나기만 했다. 그러나 거기서 지낸 2년도 잊을 수 없다. 고비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지지 덕분이었던 것 같다. 서른아홉, 젊다면 젊었고 아이들은 순수했다. 첫해는 담임 없이 수업만 했고 이듬해는 학기 중간에 1.. 2019. 3. 22.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1) 이웃이 된 제자들(1) 한 5년쯤 될까. 교직에 들어 한동안은 ‘제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어쩐지 ‘제자’라는 말을 올리는 게 민망해서였다. ‘제자’라는 말의 상대어는 당연히 ‘스승’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제자’라고 말하려면 내가 ‘스승’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통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교사들 대부분은 그런 자격지심과 무관한 일상어로 이 낱말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심히 제자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예사롭지 않은 자격지심이 멀쩡한 동료를 능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다. ‘스승과 제자, 혹은 교사와 학생’ 사이 그래도 ‘스승’을 입에 올리는 것은 서른 해를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다. 모든 교사에게 ‘스승의 날’은 언제나 부담스러워 피하고.. 2019.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