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어버이3

친어버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에 친 어버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을 맞으며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공연히 오지랖이 넓어지는 증세가 도진다. 수업을 마치기 전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잠깐…, 내일 이야기를 좀 하자. ……무슨 날인지 알지?” “? ……, !” “체육대회요!” “어버이날요!” “준비들은 하고 있겠지?” “…….” “문자나 보내죠, 뭐.” “꽃이나 달아드려야죠.” 아이들은 좀 풀이 죽은 듯 침묵하거나 다소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아이들에게 내일 치르는 체육대회는 가깝고, 어버이날은 멀다. 열여덟 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나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깨우치기에는 어린 나이고, ‘나와 가족의 관계’에 대한 자의식을 갖기에는 넘치는 나이다. 뜻밖의 답도 있다. “부끄러워서요…….” 나는 아이가 말한 부끄러움의 의미를 이해한다. 18.. 2020. 5. 10.
세상의 모든 ‘자식들’, 모든 ‘어버이’ 찾아뵐 어버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에 낫는가 싶던 기침이 어제부터 다시 슬슬 잦아지기 시작했다. 간밤에 깰 때마다 소리 죽이고 기침하느라 힘이 들었다. 5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다시 병원엘 가야 하나 어쩌나 하고 궁싯거려야 한다는 사실이 좀 짜증스럽다. 지난 어린이날은 방송고의 중간고사 시험날이었다. 더는 어린이가 없는 집에서는 ‘어린이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일 뿐이다. 우리 집뿐 아니라, 주변에 어린이가 있는 친지도 거의 없다. 장성한 아이가 혼인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 이상 당분간 어린이날을 챙길 일은 없을 터이다. 어버이날도 다르진 않다. 어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다. 친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처가에도 장모님 한 분만 살아계시니 ‘어버이날’을 챙기는 게 훨씬 ‘수월.. 2020. 5. 9.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10년 넘게 써 온 글이 천 편이 넘었지만, 그 가운데 몇 편이나 '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다시 부끄러움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 있긴 하다. 글을 쓴 때와 내용 분류와 관계없이 무난히 읽히는 글을 한 편씩 다시 싣는다. 때로 그것은 허망한 시간과 저열한 인식의 수준을 거칠게 드러내지만, 삶의 편린들 속에서도 오롯이 빛나는 내 성찰의 기록이다. 나날이 닳아지고 있는 마음의 결 가운데 행여 거기서 예민하게 눈뜨고 있는 옛 자아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써 놓고 보니 꼼짝없는 신파다. ‘인간은 서서 걷는다’는 진술과 다를 바 없는 맹꽁이 같은 수작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변화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뚱이와 그 기관의 노.. 2018.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