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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신영복9

노동 2제(題) - 불온한 시대, 불온한 언어 하나 : ‘노동(勞動)’과 ‘근로(勤勞)’ 사이 언어는 기본적으로 시대나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당대의 세계 파악 방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 땅 곳곳에 팬 역사와 슬픔의 생채기만큼이나 우리 시대의 말은 숱한 앙금과 그늘로 얼룩져 있는 듯하다. 그 가장 오래되고 시방도 계속되는 원인은 이 땅을 동강 낸 이데올로기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공산주의, 이른바 빨갱이 앞에 중무장한 ‘맹목의 반공주의’다.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오랜 독재 정권을 끝내고 세 번째 민간 정부를 맞았지만 여전히 이 땅에는 ‘반공주의’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로 유명한 ‘government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의 ‘peopl.. 2023. 5. 1.
민중?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다 2007년 17대선은 끝나고 대통령 선거가 마감되었다. 사상 최저의 투표율인데도 당선자와 차점자의 표차는 사상 최대라는 기록을 만들면서 이 정책과 계급적 이해도 실종되어 버린 ‘민의의 축제’는 끝났다. 당선자가 누리는 압승의 기쁨 건너편에는 패배한 낙선자들의 부끄러움과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대선의 화두는 ‘경제’였다고 한다. 여러 가지 객관적 경제 지표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지난 5년 내내 저조했고 양극화는 깊어졌던 탓이다. 그래서인가, 유권자들은 ‘경제’를 중심에 두고 일찌감치 CEO 출신의 한 후보를 지지했고, 대선 기간 내내 드러난 이 후보와 관련된 여러 부패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철회하지 않았다. 1997년 대선에서 당시 가장 유력했던 후보가 낙마한 것은 두 아들.. 2021. 12. 21.
6·2 지방선거(2010), ‘민심과 선택’ 2010년 지방선거 이야기 지방선거일 아침은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았다. 임시 공휴일이어서 투표를 마치면 남아도는 시간이 쏠쏠하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우리 가족은 10시 반쯤에 인근의 투표소를 다녀왔다. 딸애 말마따나 ‘투표하지 않아도 도움이 될’ 노인들만 우글대고 있지 않은가 싶었는데 뜻밖에 투표소는 한산했다. 투표하러 온 유권자보다 작지 않은 공간에 종사자들 수가 훨씬 많았다. 한 번에 넉 장씩 두 차례나 투표지를 받아서 기표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이삼 분에 지나지 않았다. 기표소 안에서 투표용지를 펴 놓으니 기도 안 찼다. 정말 아무리 들여다봐도 찍을 만한 데가 없었다. 6·2 선거, ‘국민의 승리’ 우리 가족은 미리 합의한 대로 기초와 광역 자치단체 의회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지에만 여물.. 2021. 6. 5.
2월, 이별의 계절 다시 학년말, 곧 이별이다 지난 12일에 학교는 종업식을 하고 공식적으로 2009학년도를 마쳤다. 그 이틀 전에는 3학년 아이들이 졸업식을 치르고 학교를 떠났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졸업식을 전후한 학교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인다. 뭐라고 해야 하나. 한 해를 마치는 것이니 좀 들뜬 분위기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뜻밖에 학교는 고즈넉이 가라앉아 있다.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식장에 앉은 졸업생들은 어느새 훌쩍 자란 듯한데 연하게 화장한 아이들의 얼굴 너머에 숨어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이다. 진급을 앞둔 재학생들도 공연히 점잔을 빼고 있다. 3월이 되어 다시 수험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아이들은 지레 지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3월이 되면 아이들은 이내 활기를 되.. 2021. 2. 11.
다시 ‘늦깎이’들을 기다리며 변혁의 시간에 응답한 늦깎이들의 활동으로 진보는 두터워졌다 어쩌다가 지역의 전교조 행사나 집회에 가면 낯선 얼굴들이 많다. 공식적인 역할을 떠난 지 십 년이 가까워지진 까닭이다. 그러나 낯선 얼굴들 사이에 낯익은 얼굴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경험은 절대 나쁘지 않다.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조직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40대 초중반의 단단해 뵈는 활동가들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들 가운데엔 20대 후반부터 꾸준하게 일해 온 친구들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에 만난 한 후배 여교사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될 만큼 성큼 자란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던 막내 시절의 그를 기억하면서 나는 그들을 중견 교사로 길러낸 세월을 생각했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나와.. 2021. 1. 26.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후 20년 신영복 선생의 그리고 20년 글쎄, 쇠귀 선생의 글은 모두 짙은 사색의 향기를 어우르고 있긴 하지만, 그가 쓴 글의 으뜸은 역시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 실린 글 ‘비극에 대하여’를 읽고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0년 20일쯤을 감옥에서 보낸다면 이런 깨달음, 이런 인식의 지평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신영복 선생을 만난 게 1988년이다. 87년 6월항쟁의 과실을 어부지리로 챙긴 노태우가 올림픽에 명운을 걸고 있던 때였다. 3월에 4년간 근무한 여학교를 떠나 고향 인근의 남학교로 옮겼다. 전세 500만 원, 재래식 화장실에다 부엌이 깊은 집(가족들은 지금도 그 집을 ‘부엌 깊은 집’으로 부르곤 한다.)에 들었다. 그 당시 창간된 을 받아보았는데 그 지면에서 쇠귀의 글을 만났다. 서른셋, 이른바 학.. 2019. 10. 26.
밭, 혹은 ‘치유’의 농사 농사를 지으며 작물과 함께 농사꾼도 ‘성장’한다 오랜만에 장모님의 비닐하우스에 들렀다. 여든을 넘기시고도 노인은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억척스레 몸을 움직여 한 마지기가 훨씬 넘는 밭농사를 짓고 계신다. 북향의 나지막한 산비탈에 있는 밭에는 모두 세 동의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두 동은 나란히 나머지 한 동은 맞은편에 엇비슷하게 서 있다. 예년과 같이 주가 되는 작물은 역시 고추다. 해마다 우리 집을 비롯하여 경산과 부산에 사는 동서, 처고모 댁의 김장용 태양초가 여기서 나는 것이다. 키가 훌쩍 큰 품종인데 가운뎃손가락 굵기의 길쭉한 고추가 벌써 주렁주렁 달렸다. 유독 장모님 고추만이 인근에서 가장 빠르고 굵고 실하게 열린다고 아내는 자랑인데, 아마 그건 사실일 것이다. 오른쪽 비닐하우스 위쪽은 .. 2019. 6. 29.
“추억은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온다” [서평] 신영복의 쇠귀 신영복 선생의 을 오열하며 읽은 것은 지난 1월 하순께다. 부음을 듣고 동료들과 선생을 추모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그랬다. 선생이 쓴 책은 모두 갖고 있는데 왠지 이 빠졌다고. 다음날 후배 여교사가 집에 있던 책을 가져와 건네주었다. 나는 이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몰랐다. 단지 나는 치열하게 살아온 선생의 이력과 겹치는 무엇일 것이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1960년대 말에 선생을 이 사회와 격리해 버린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의 어떤 부분과 이어지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이다. 청년과 어린이들의 ‘교유’ 두 해 나는 ‘청구’를 ‘靑丘’로 이해한 다음, 그게 선생이 몸담았던 어떤 조직의 이름이라고 여겼다. 이런 추리는 선생이 재판을 받는 과정의 검찰과 군법회의에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 2019. 5. 13.
‘눈록빛’을 아십니까, 우리말 같은 한자어들 이게 우리말 아니라 ‘한자어’라고? 이게 한자였어? 우리말 같은 한자어들 ‘눈록’이란 낱말을 처음 만난 것은 신영복 선생의 서간집 에서였다. 감옥 안에서 새싹을 틔운 마늘, 거기 담긴 봄을 감동적으로 전하는 글이었다. “눈록빛 새싹을 입에 물고 있는 작은 마늘 한 쪽, 거기에 담긴 봄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봄이 아직 담을 못 넘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새 벌써 우리들의 곁에서 새로운 생명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록빛! 눈과 귀에 선 낱말이었지만 나는 앞뒤 맥락으로 그게 무슨 뜻인지를 넉넉히 새길 수 있었다. 어릴 적 마늘 한 쪽을 물 담은 병 주둥이에 꽂아 두면 틔우던 새싹. 그 연둣빛을 선생은 ‘눈록빛’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멋진 우리말이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감동했.. 2019.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