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신규식2

[순국] 예관 신규식, 독립 기원하며 25일 단식 끝 순국하다 1922년 9월 25일, 독립 기원하며 25일 단식 끝 순국 1922년 9월 25일, 상해임시정부의 국무총리 대리와 외무총장을 지냈던 예관(睨觀) 신규식(申圭植, 1880~1922)이 자신이 선택했던 외교독립 노선의 좌절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정과 삼천만 동포를 잘 보살펴줄 것’을 당부하고 대화조차 거부하고 단식에 들어간 지 25일 만이었다. 숨이 멎기 전에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정부! 정부’였다. 상하이 임정은 수립된 지 2년여 만에 이념과 출신 지역에 따른 파벌로 인한 내부적 갈등으로 심각한 분열에 처해 있었다. 독립운동의 방법론에 따라 외교독립론(이승만계), 무장독립론(박용만계), 실력양성론(안창호계)이 충돌했고 임정의 대표성 문제도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제기된 국민대표회.. 2023. 9. 25.
후미진 중국 골목에 한국인이 줄을 서는 이유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①] 상하이, 1919년에서 1932년까지 광복 70년, 서른여덟 명의 ‘청년 백범 4기’ 답사단은 지난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아래 임정)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에 올랐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수립된 임정의 중국 내 이동 경로는 항저우(杭州), 전장(鎭江), 창사(長沙), 광저우(廣州), 류저우(柳州), 치장(綦江)을 거쳐 충칭(重慶)까지다. 그러나 우리의 여정은 우선 창사로 옮기기 직전의 난징(南京)까지다. 지난 세기, 백범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이 배를 타고, 혹은 기차를 타거나 걸어서 옮겨 다닌 수백, 수천, 수만 리의 길을 21세기의 후손들은 비행기로 날아 전세 버스를 타고 따른다. 그들이 일제에 쫓기며 꾸려야 했던 풍찬노숙 16년(191.. 2019.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