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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신군부4

[오늘] 1979년 오늘-중앙정보부장은 절대권력의 심장을 쏘았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박정희 시해 개인의 체험과 역사 사이 언제나 역사 속에 존재하지만, 역사와 자아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전쟁과 같은 역사는 그 외연이 워낙 크고 넓어서 그것을 겪은 이들의 공동의 기억으로 환기되곤 한다. 어떤 이에게 죽음의 공포로, 또 어떤 이에게는 굶주림의 고통이나 절망 따위로 전쟁이 떠오르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극적으로 전개된 우리 현대사에서 6월항쟁 같은 기억은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추체험할 수 없다. 이런 경우 현장에서의 체험은 역사와 자아와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시대를 살았으나 그것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 비겨 그는 날것의 역사를 겪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2023. 10. 26.
[오늘] 6월항쟁이 끌어낸 ‘6·29선언’, 신군부 국민에게 백기 들다 [역사 공부 ‘오늘’] 1987년 6월 29일-신군부,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항복하다 1987년 6월 29일,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고 야당 지도자 김대중의 사면복권을 건의하는 등 획기적인 시국수습 8개 항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열린 민정당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발표한 ‘국민 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선언’을 통해서 여야 합의로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을 개정하여 새 헌법으로 선거를 치러 88년 2월에 평화적 정부 이양을 실현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것은 불과 두 달 전에 나온, 대통령 전두환의 ‘4·13 호헌선언’을 완전히 뒤집고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에 맞서 온 야당과 재야 시민사회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 2023. 6. 29.
[오늘] 신군부, 정권 사유화 기구 ‘국보위’ 설치 [역사 공부 ‘오늘’]1980년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신군부, 정권 사유화 기구 국보위 설치하다 1980년 5월 31일, 광주항쟁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12·12와 5·17 쿠데타로 탈취한 정치 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 자문·보좌 기관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약칭 국보위)를 설치했다. 내각을 장악하기 위한 임시 행정기구 국보위는 80년 10월 29일 폐지될 때까지 약 5개월간 정권의 정통성과 도덕성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최상위 권력 기구’로 존재하면서 초법적 지위를 누렸다. 이는 1980년 5월 초 전두환의 보안사령부가 시국 수습을 명분으로 기획한 ‘비상계엄 전국확대’·‘국회 해산’·‘국가 보위 비상기구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집권시나리오의 하나였다. 신군.. 2023. 5. 31.
얼치기 야구팬의 ‘프로야구 30년사’ 단 두 차례만 야구장에 가본 유사 팬이 바라본 프로야구 월요일이다. 한 주일이 시작되는 날이지만 월요일을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날’로 기억하는 이들도 적잖을 터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한, 주중에도 야구 중계의 ‘본방을 사수’해 온 내게도 월요일은 그렇게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월요일은 그래서 아내에게 채널의 선택권이 온전히 귀속되는 날이 된다. 프로야구 시즌의 ‘본방 사수’ 퇴근하기 바쁘게 내가 TV 채널을 선점해 버리는 프로야구 시즌이 오면 아내와 딸애는 이구동성으로 ‘저놈의 징한 야구……’를 되뇌면서 선선히 건넌방으로 옮겨간다. 한 주일 내내 채널을 독점하는 것은 가장으로서 할 짓이 아닌지라 한 사나흘쯤은 내가 건넌방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채널 선택권의 향방이 가정에서의 권력 판도를 시사해주는 현.. 2022.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