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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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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우산, 그리고 시(詩) 세 편 비 오는 날 읽어보는 시 비는, 혹은 비 오는 날의 이미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극단으로 나뉜다.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모처럼의 외출이나 손꼽아 기다려온 경사를 망치는 불쾌하고 짜증나는 날씨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쓸쓸하면서도 적당히 기분 좋은 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가 맑고 투명한 햇살을 삼켜버리며 일시에 세상을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로 바꾸어 가긴 하지만, 그것이 연출하는 적요(寂寥)와 우울(멜랑콜리melancholy)을 사랑하는 이도 적지 않다. 비는, 또는 비 오는 날은 잊었던 감상(感傷)과 애상(哀傷)의 정서를 환기하며 그를 그리움과 추억, 슬픔의 시간으로 인도해 주기도 한다. 비는 물이다. 이 빗물이 가진 정화(淨化)의 이미지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하강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증.. 2022. 1. 31.
장미보다, 다시 찔레꽃 5월, ‘찔레꽃의 계절’ 해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여기저기 찔레꽃을 찾아 나서곤 해 왔다. 철 되면 피는 꽃이 올해라고 달라질 리 없건마는 4월이 무르익을 때쯤이면 나는 고개를 빼고 산기슭이나 골짜기를 살펴보곤 하는 것이다. * 찔레, 그 슬픔과 추억의 하얀 꽃(2010/05/28) * 장미와 찔레, 그리고 이연실의 노래들(2015/05/16) 그러나 찔레꽃을 그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언제나 반 박자쯤 늦다. 조금 이르다 싶어 잠깐 짬을 두었다 다시 찾으면 이미 그 하얀 꽃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던 게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일로 바빴나, 그저께 며칠 만에 오른 산어귀에서 만난 찔레꽃은 바야흐로 그 절정의 시기를 막 넘고 있는 참이었다. 지난 9일 치른 대선이 ‘장미 대선’.. 2020. 5. 20.
‘형’을 찾아서 20년 전에 떠난 벗의 아우, 그의 ‘형’ 찾기 친구·애인만큼 가족을 ‘진짜’ 알고 있나요? 설날 처가에서 처조카 녀석의 컴퓨터를 뒤적이다가(이젠 이 정보통신기기가 책을 대신하고 있으니 이렇게 표현해도 무방하지 싶어서 쓴 표현이다.) 의 “샐 위 패밀리 인터뷰?”라는 기사를 읽었다. “친구·애인만큼 가족을 ‘진짜’ 알고 있나요? 제삼자가 돼 가족을 바라보고 질문해 보실래요?”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글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동화 속 얘기다. 대부분의 가족은 오해와 무지와 무관심이 8할이다. 친구, 애인, 직장 동료를 아는 것의 절반만큼이나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동생, 내 누나, 내 언니를 알까.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가족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묻지 못하고 .. 2019.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