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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수몰2

물에 잠길 뻔했던 문화재들, 이리 보니 반갑네 음악과 유적 어우러진 충북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수몰(水沒)의 역사는 근대화, 정확히 말하면 댐 건설의 역사와 겹친다. 자연적 지형의 변화로 한 마을이 깡그리 사라지는 일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댐 건설은 당연히 인공의 호수를 만들어낸다. 이 인공호는 그 발치에 누대에 걸친 지역 공동체를 수장시켜 버린다. 수몰은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낯선 땅으로 쫓아냈다. 이른바 ‘수몰 실향민’이다. 분단으로 고향 잃은 사람들 대신 근대화와 개발은 물에 잠긴 고향을 둔, 전혀 다른 실향민을 양산했다. 그들은 물에 잠긴 집을 떠나 호수 주변의 인근 마을에 새로 뿌리를 내리거나 고향을 등지고 도회로 떠났다. ‘발 달린 사람’은 간단히 물에 잠긴 옛터를 떠나지만, 문제는 발 없는 고가 등의 문화재다. 이들은 여느 집이.. 2020. 10. 20.
나무는 살아남았고, 사람들은 과거를 잃었다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 기행 100년, 한 세기를 넘으면 사람이나 사물은 ‘역사’로 기려진다. 백 년이란 시간은 단순히 물리적 시간의 누적에 그치지 않고 그 나이테 속에 한 나라, 한 사회의 부침과 희비와 온갖 곡절을 아로새기기 때문이다. 거기엔 물론 아직도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년을 넘지 못하는 까닭도 있을 터이다. 굳이 아흔아홉을 ‘백수(白壽)’라 부르는 까닭도 그 백 년이 쉬 다다를 수 없는 시간이라는 반증이다. 그러나 백 년을 넘기더라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존재의 한계’라는 표현은 그런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백 년을 훌쩍 넘기는 사물로 눈을 돌려본다. 백 년을 넘겨 장수하는 사물 가운데 고건축을 제외하면 생명을 가진 것으로는 나무를 꼽을 .. 2020.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