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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쇠귀 신영복3

새 학기 책 꺼풀? 변소 뒤지? 이젠 ‘시간 그릇’ 시간의 나침반, 나의 ‘참교육 달력’ 이야기 달력은 한 해의 시간표다. 그것은 일상의 가늠자이면서 한 시기의 나침반이다. 물리적인 시간을 길쭉한 사각형의 종이 뭉치 속에 쟁여 넣은 생활의 계획표다. 사람들은 달력을 한 장씩 찢고 넘기면서 세월을 헤아리고 그 무상을 새롭게 이해하기도 한다. 교과서 책 꺼풀에도 쓰고, 바람벽에 도배도 하고, 변소 ‘뒤지’로도 달력과 관련된 가장 오랜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의 것이다. 새 학기에 새 교과서를 받아 집으로 가져오면, 누님은 보관해둔 묵은 달력의 낱장을 찢어 아주 튼튼하게 꺼풀을 입혀 주었다. 신문지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어서 적당한 두께의 매끄러운 달력 종이는 조악한 품질의 교과서를 보호하는 데는 그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꺼풀을 입혀야 할 책이 몇 권인가, 쓸 수.. 2020. 12. 19.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을 보내며 1941 ~ 2016년 1월 15일 쇠귀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다. 나는 어젯밤 늦게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고 난 직후였던 듯하다. 아,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어.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아내가 연세가 어떻게 되우, 하고 물었었다. 일흔다섯인데……, 하고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당시 창간된 의 지면에서였다. 선생이 옥중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글이었는데 거기서 나는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의 글은 그때까지 내가 읽은 어떤 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기품과 향훈을 그득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글에는 지혜(이성)와 감성이 가장 완벽하고 조화롭게 만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드넓은 인식의 지평은.. 2020. 1. 14.
다시 난설헌을 생각한다 ‘현모양처’가 아니라 당대의 시대적 모순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위대한 문인 허난설헌 신영복 선생의 ‘난설헌 생각’ 고액 종이돈에 실릴 인물 선정과 관련된 논란이 어지러웠다. 신사임당이 고액권 지폐의 도안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엉뚱하게 동시대의 여성 허난설헌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란 글에서 신영복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애일당 옛터에서 마음에 고이는 것은 도리어 그의 누님인 허난설헌의 정한(情恨)이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한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하던 그녀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무덤을 찾을 결심을 한 것은 오죽헌을 돌아 나오면서였습니다. -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 중에서 선생은 오죽헌을 .. 2019.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