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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소산리2

안동 소산리와 청음 김상헌 척화대신 청음 김상헌의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안동 인근의 마을과 고택, 그리고 곳곳에 자리한 정자와 절집을 더듬고 거기 관한 글을 써 온 지 두어 해쯤 되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였다. 그러다 우연히 그 글을 다듬고 기워 에 보내고 기사로 실리면서 예의 글쓰기는 힘을 받았나 보다. 제대로 공을 들이고 내용을 채운 글은 기사로, 그보다 가볍고 부담 없이 쓴 글은 블로그에 올리곤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다닌 길은 물론 아니다. 나는 내가 사는 땅의 내력이나 뜻을 이해하는 일은 이 땅의 한 귀퉁이에 깃들여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양반’은 화석이 된 전근대의 신분적 표지일 뿐 그런데 이 땅이 이른바 ‘양반의 고장’, 그것도 꼬장꼬장한 ‘안동 양반’의 땅이다. 어지간히 허술하다 싶은.. 2020. 8. 8.
척화 대신, 모국어로 ‘망국’을 노래하다 [안동 시가 기행 ⑤] 청음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아이들에게 우리 문학을 가르치다 가끔 그런 얘길 하곤 한다. 만약, 송강 정철이, 또는 고산 윤선도가 ‘진서(眞書)’가 아닌 ‘언문(諺文)’으로 된 노래를 남기지 않았다면, 혹은 그들이 ‘사미인곡’이나 ‘관동별곡’을, 또 ‘어부사시사’와 ‘오우가’를 우리말 아닌 한시로 남기고 말았다면, 하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문학 유산이 한문투성이의 시부에 그친다면 그게 얼마나 ‘끔찍한 풍경’일 것인지를. 조선조 사대부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한문 공부를 시작하여 평생을 이국 문자의 의미망 속에서 갇혀 산 이들이다. 당연히 이들은 한문으로도 완벽한 문자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굳이 우리말로 노래한 까닭.. 2019.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