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세대의 순환5

시월 유감 퇴임 이후를 생각한다 시월,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한가위를 쇠고 나자 갑자기 갈피를 잃어버린 기분이 되었다. 예전처럼 고향 갈 일이 없어 명절은 단출하게 보냈다. 연휴 중에 몸이 성치 않아서 한나절쯤 고생을 했다. 좀처럼 앓아눕는 일이 없는 편인데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질병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연휴 끝나고 돌아온 학교, 3학년은 그예 모든 진도와 강의를 끝내고, 마무리 학습으로 들어갔다. 하루 아홉 시간, 모든 통제로부터 풀린 혼곤한 자유 앞에서 외려 아이들은 지치고 겉늙어 보인다. 끊임없이 자거나 멍해진 눈길로 습관적으로 교재에 머리를 파묻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세상이 참 모질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퇴임 ‘이후’ 생각 지난 월요일부터 3학년은 마지막 기말, 1·2학년은 중간시험을.. 2021. 10. 7.
‘잠’을 생각한다 초저녁잠, 노화의 증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게 노화의 증거라고 여기게 되기 때문인지 저도 몰래 그 기산점을 늦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넉넉잡아 쉰을 넘기면서부터라고 해 두자. 어느 날부터 초저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밤 9시를 전후해 쏟아지는 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은. 어느 날 찾아온 ‘초저녁잠’ 천하에 없는 드라마라도 혹은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읽고 있더라도 갑자기 엄습해 오는 잠 앞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게 고꾸라지면 두어 시간을 죽은 듯 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컷 잤다 싶어서 깨어나면 자정 무렵이다. 밤이 길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 마치 꿈결처럼 다가온다. 전전반측, 옛 국어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쯤은 기본이고, 운수 사나우.. 2020. 5. 21.
어떤 부음(訃音), 한 세대의 순환 지난 토요일 오후에 시방도 고향을 지키고 있는 이웃 형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 선친과 지기였던 그의 부친이 별세했다는 기별이었다. 의례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으면서, 그제야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이제 세상에 아버지 세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3년 전, 어머니를 여의면서, 이제 아버지, 어머니의 동기간(同氣間)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깨우침에 가슴이 아려왔던 기억을 희미하게 떠올렸다. 아버지는 2대 독자셨고, 누이가 두 분 계셨다. 따라서 아버지 동기간은 모두 여섯 분인 셈인데, 당신의 막내 누이, 그러니까 내 작은고모는 아들 하나만 남기고 일찍(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세상을 뜨셨다. 고모는 그때 30대 중반.. 2019. 11. 29.
택호(宅號)…, 그 아낙들에겐 이름이 없다 부인 이름 대신 쓰이는 ‘택호’ 지난 주말에 벌초를 다녀왔다. 내 본관인 인동(仁同)은 칠곡군 인동면이었으나 구미시가 커지면서 거기로 편입되어 구미시 인동동이 되었다. 인동 인근에 우리 집안의 선영이 꽤 많다. 구포동의 솔뫼 부근에 6기를 비롯하여 구평동에도 9대조 내외분을 합장한 산소가 있다. 구평동 산소는 뒷산에 벼락 맞은 큰 바위가 있어 ‘불바우’[화암(火巖)]라고 불리는 동네에 있다. 그 동네는 지금은 코앞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도시 변두리로 편입되었지만, 예전에는 불바우라는 이름이 친근한 촌 동네였었다. 마을 입구에 예전에 없던 ‘불바위’와 ‘火巖’이라 새긴 커다란 자연석이 서 있었다. 우리 집안에는 이 마을 이름을 택호로 쓰는 어른이 두 분 계셨다. 내게 삼종조부가 되는 ‘화암 할배’.. 2019. 9. 19.
노인들 - 세대의 순환, 혹은 역사 2011년 설 특집으로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을 다시 시청했다. 무려 8년 전의 프로그램인데, 출연한 노인들의 곡절과 사연들이 훨씬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때 50대였던 내가 60대 중반, 동병상련의 감정을 피할 수 없게 한 나이가 노인들을 바라보는 내 눈길을 훨씬 더 부드럽게 바꾸어놓은 것이다. 단순히 노화나 죽음에 대한 개인적 두려움이나 연민만은 아니다. 시간이, 더 본질적인 인간의 생로병사를 나의 문제로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의 일부라는 사실도 접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8년, 그들 중 또 몇몇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얼굴을 비친 80대 이상의 노인들은 일찌감치 세상을 떴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 주변의 친지,.. 2019. 9. 3.